공동보도문 2항을 둘러싼 남북의 '아전인수'
 

▲ 22일부터 시작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25일 새벽 공동보도문을 채택하고 마무리됐다. 왼쪽부터 김양건 당비서, 김관진 안보실장,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홍용표 통일부장관.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22일부터 열린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25일 공동보도문 발표로 마무리됐다. 이례적인 군사적 대치 상황이나 극적인 대화 성사, 최고위급 당국자들의 참석, 43시간여의 마라톤 회의, 극적 타결 등 화젯거리도 많고, 극적 요소도 많았다.

어쨌든 협상은 마무리됐고, 6개항의 공동보도문이 남게 됐다. 아무래도 공동보도문 2항의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는 문구가 논란거리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이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발표했고, 북측 단장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남조선 당국은 근거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라고 사실상 이를 부인했다.

상대가 있는 협상이라는 것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남측 입장에서 북측이 남측지역 사건에 유감을 표명한 것은 ‘사실상 인정 및 사과’로 해석할 소지가 있고, 북측 입장에서 지뢰폭발과 남측 군인 부상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위로’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절충적 표현이 아니라면 이번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부인하고 있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 물밑 협상에서 이 같은 방식의 타협적 문구가 작성된 적이 있다.

오히려 북한이 준전시 상태에 돌입하게 된 ‘군사분계선 일대의 교전사태’에 대한 언급이 공동보도문에 빠져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남측은 20일 오후 북한군이 먼저 14.5mm 고사포 1발을 야산에 쐈고, 2차로 76.2mm 직사포 3발을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MDL) 남쪽 700m 부근에 투척해 우리 군도 155mm 자주포탄 29발을 도발원점이 아닌 군사분계선 북쪽 500m 전방에 대응사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측은 자신들의 선제 사격을 전면 부인했다.

남측은 북측의 선제사격에 대해 몇몇 정황자료들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결정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뢰폭발 사건에 대해서 북측의 명백한 사과를 받지 못한 이유도 북한 인민군이 지뢰를 가설하는 동영상 같은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남북간 협상이 한창인 23일 연천군 비무장지대 내에서 발생한 지뢰폭발 사고는 현장조사 결과 아군 M14 지뢰폭발로 확인됐다. 정부는 언론에 ‘엠바고(보도유예)’를 요청하고 쉬쉬하며 이 사실이 알려질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어쨌든 지뢰폭발 사건과 관련 북측이 ‘유감’을 표명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을 남측이 25일 정오부로 중지하기로 한 것이 이번 협상의 골자로 보도되고 있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볼 경우 4항 “북측은 (동시에)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는 조항이 군더더기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남측 공동보도문에는 ‘동시에’라는 단어가 빠져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공동보도문 핵심은 3,4항..4항은 전체 맥락 살펴야

▲ 이례적인 최고위급 접촉이 사흘 밤을 지새며 마라톤회의로 진행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공동보도문만 놓고 보면 사실 2항 ‘유감’ 표명은 남북이 모두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사전 정지 작업’에 속한다. 어떻게든 짚고 넘어가야 할 관문인 셈이다. 핵심은 남측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북측이 (동시에) 준전시상태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통일뉴스>가 다른 매체들의 보도와 달리 공동보도문 타결 기사 제목을 ‘南 확성기방송 중단, 北 준전시상태 해제’로 뽑은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관련기사 보기]

한 정부 소식통은 “대표단 구성으로 봐서 북측의 협상력이 뛰어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회담장에서 북측이 확성기 방송 중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남측이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고 평했다. 보수 언론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측의 ‘아킬레스건’, ‘급소’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최고지도자의 명예를 국가와 인민의 명예와 동일시하는 북한에서 자신들의 최고지도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송이 계속 되는 상황은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일까?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통일전선부에서 잔뼈가 굵은 황병서 군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비서가 확성기 방송 중단에 집중한 것은 다름 아닌 ‘최고사령관 명령’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포격전이 발생한 20일 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21일 오후 5시부로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앞서 북한은 20일 오후 5시 인민군 총참모장 명의의 전통문에서 48시간 내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행동 개시’를 경고했고 비상확대회의에서는 이를 재확인했다.

이번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은 시작부터 타결까지 남측의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한 북측 48시간 시한부 군사행동 경고, 준전시상태 돌입이라는 물리적 대치 상황이 중심에 가로놓여 있었다. 따라서 북측은 최고사령관이 선포한 준전시상태와 48시간 경과시 군사행동을 염두에 두고 모든 구도를 짰던 것이다. 먼저 북측은 21일 남측에 김양건-김관진 접촉이라는 최고위급 접촉을 제안했다. 군사적 압박과 정치적 협상이라는 양면전술을 구사한 것.

남측은 김관진.홍용표-황병서.김양건이라는 2+2회담으로 수용했고 장소도 남측의 ‘평화의 집’을 관철시켰지만 결국 북측의 정치적 협상 제안을 수용한 셈이다. 북측은 협상에서 집요하게 확성기 방송 중단을 관철시켰고,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아 합의해줬다. 결국 북한은 ‘동시에’라는 단서를 달아 준전시 상태 해제를 선언했다. 공동보도문 4항에 북측이 굳이 ‘동시에’라는 표현을 꼭 집어넣어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다.

사실 공동보도문 2항에 북측의 ‘사과’를 명문화하지 못하고 ‘선제 포격’은 언급조차 못한 사실을 보수세력이 강력하게 문제삼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제식구 감싸기’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진보정권이 이 같은 합의문을 내놓았을 때도 보수세력이 잠자코 있었을까? 아니, 북측이 제안한 고위 당국자 접촉에 응한 것 자체를 문제삼았을 지도 모른다.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받았다는, ‘원칙의 승리’라는 낯뜨거운 주장은 삼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공동보도문, 1항에 주목 돌려야

▲ 최고위급 접촉을 통해 남북은 상호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후 당국자(당국) 회담을 통해 대화와 협상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형식적으로만 따지면 박근혜 정부는 일관되게 남북 당국자 회담을 요구했고, 회담장에서 모든 것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북측은 고위급 접촉을 비롯한 당국자 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위기상황에서 최고위급 접촉을 제안해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당국자 회담(북측 공동도도문에는 ‘당국회담’으로 표기) 개최에 합의했다. 공동보도문의 1항이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자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동보도문 2,3,4,항은 한 번의 합의로 사실상 덮고가는 사안이 되고 말았다. 이후 과제는 1,5,6항에 담겼다. 그 첫 번째 가장 중요한 합의가 바로 남북 당국자 회담(당국회담)인 것이다. 5항의 이산가족 상봉과 6항 민간교류 활성화는 일단 남북이 가장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당면 사안이다. 향후 당국자 회담에서 다양한 남북간 현안들이 다뤄지게 될 것이다.

이번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합의한 공동보도문은 확성기 방송 중단과 준전시 상태 해제라는 최소한의 합의를 담고 이후 과제는 당국자 회담이라는 틀로 넘겼다. 따라서 이번 접촉과 공동보도문은 ‘위기국면 수습을 위한 최소한의 접촉과 합의’ 성격이 짙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이후의 숙제는 남북 당국에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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