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주기 의성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첫 위령제 열려
“오늘 영혼의 빗줄기가 대못처럼 내리꽂히는 이 피밭재에서
마침내 오래 참고 참았던 들꽃들이 일제히 피어나는 이 작두골에서
그대 산 자들에 대한 한결같은 그리움으로 이 추도시를 쓴다.”
지난 7월 25일 낮 경북 의성지역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에 대한 합동위령제가 열린 작두골.
망자의 마음으로 아들과 손주에게 전하는 65년 간의 그리움이 나지막하면서도 장중한 시인의 음성으로 골짜기에 퍼지자 유족들의 흐느낌도 깊어만 갔다.
65년 만에 처음 열린 이날 위령제에는 한국전쟁전국유족회와 의성 유족, 양심수후원회 회원 등 90여 명의 추모객들이 참석해 부당한 공권력에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위령제는 진혼무와 헌작 의례에 이어 의성학살의 경과보고와 유족대표인사, 추도사와 추도시 낭송, 추모노래 공연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헌화와 분향을 마친 추모객들은 50~60명이 총살된 작두골 학살 추정지를 둘러보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제65주기 1회 의성 합동위령제 경과보고]
- 1945년 8월 15일 : 광복
- 1946년 10월 1일 : 대구.영남 10월 항쟁 발발, 확산
- 1949년 4월 20일 : 국민보도연맹 결성
- 1950년 2월 3일 : 의성군 국민보도연맹 결성
- 1950년 6월 25일 : 한국전쟁 발발,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인 예비검속 시작
- 1950년 6월 말~7월 말 : 의성 민간인 수백 명 불법 학살
(다인면 피밭재, 비안면 작두골, 의성읍 여시개)
- 1950년 9월 : 수복 후 부역자 처형(의성읍 구봉산)
- 1960년 4.19혁명 이후 전국유족회 결성, 활동 개시
- 1960년 4대 국회 양민학살진상조사단 : 의성 희생자 105명 명단 작성
- 1961년 5.16쿠데타로 유족회 붕괴, 연좌제 강화
- 2005년 12월 1일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
- 2009년 11월 3일 : 과거사위 '의성 국민보도연맹 사건 진실규명결정서' 채택
(희생자 총 57명 진실 규명, 신원 확인 54명, 추정 3명)
- 2010년 12월 31일 : 과거사위 폐지, 국가의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등 권고
- 2010~2015년 국가배상소송 진행 : 신평 류경식, 최팔문, 유석홍 유족 등 일부 승소
- 2015년 7월 25일 : 제1회 합동위령제 개최
- 2015년 현재~ : 과거사법 추가 제.개정안 국회 계류, 의성유족회 결성 준비이날 추모사에서 김광년 한국전쟁유족회 회장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학살 만행이 일어난 지, 그리고 슬픔조차 빨갱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통한의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온 지 65년이 흘렀습니다”라고 운을 뗀 뒤, “오늘 이 위령제가 영령들을 추모하는 자리일 뿐 아니라, 아직도 지하에서 눈감지 못하고 신음하고 계시는 영령들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굳은 각오를 다짐하는 자리이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식민지 피해국이면서 전승국인 우리나라가 전후 강대국의 전략에 따라 분단되면서 이후 동족상잔과 백만이 넘는 민간인 희생을 불러왔다”고 지적하고, “자주적인 통일만이 참된 민족해방이고 조국광복이다. 상대를 적이라 간주하는 묵은 감정을 버리고 남북교류와 화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추도시]
나를 위해 슬퍼하지 말거라
- 제65주기 경북 의성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에 부쳐, 이산하
우리들의 삶이란 높고자 하는 산과 낮고자 하는 물이 서로 인연으로 만나
세상으로 흘러드는 강물처럼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대들과 나의 인연 또한 그런 것이 아니더냐.
오늘 잠시 세상에 나와 들꽃들을 보니 평지보다 벼랑의 꽃들이 먼저 피었구나.
어둠도 복면을 하는 세상은 여전하지만
종일 골짜기에 울던 총성은 사라지고 새들 노래만 자욱하구나.
낡은 것들 갔으나 새로운 것들 아직 오지 않았으니
어느 세상인들 영문 없이 지는 게 어디 7월의 꽃들뿐이겠느냐.
17살 소년이 이젠 백발의 80 노인이 된 나의 아들아.
뜨거운 여름, 포승줄에 묶여 잠깐 끌려갔다 오리라 생각하며
신작로 미루나무 사이로 너를 힐끗 본 게 마지막이었구나.
그 잠깐이 60년의 세월이란 걸 난들 어찌 알았겠느냐.
그러나 이 애비의 제사상을 차리는 데 60년이 걸렸다고 비통해하지 말거라.
600년이 걸려도 사과 하나, 배 하나 구경 못하는 넋들이 얼마나 많더냐.
그리고 나의 손주들아,
결코 야만의 세월을 탓하거나 저주하지 말거라.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죽은 자보다 더 말이 없지 않더냐.
오늘따라 이 작두골에 피는 꽃들이 더욱 눈부시구나.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바위에 부서질 때가 가장 찬란하듯
60년 만에 단 한번 꽃을 피우고 숨을 끊는 대나무가 더욱 사무치는구나.
역사는 우리에게 강자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가르쳤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완전하지 못하고
결정적 순간마다 무릎 꿇고 말았지 않더냐.
꽃도 아름다움을 버릴 때 열매를 맺거늘
사람도 가장 아끼는 것을 버릴 때야 비로소
천둥 같은 영혼으로 피어나지 않겠느냐.
천둥 같은 영혼으로 피어나야
세상의 모든 뿌리들을 장악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리하여 그대들이 언제 어디에 있든
마지막 그대들의 뼈를 묻어야 할 곳은
항상 가장 낮은 곳으로만 방향을 트는 저 강물임을 잊지 말거라.
거듭 말하노니, 결코 나를 위해 애도하거나 슬퍼하지 말거라.
현대사 앞에서는 우리 모두 문상객이 아니라 상주이거늘
끝까지 그대들이 그대들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그대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의 존재는 존재 그 자체가 언제나 ‘최후의 한 사람’이므로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내딛듯 크게 숨을 쉬어야 한다.
오늘 영혼의 빗줄기가 대못처럼 내리꽂히는 이 피밭재에서
마침내 오래 참고 참았던 들꽃들이 일제히 피어나는 이 작두골에서
그대 산 자들에 대한 한결같은 그리움으로 이 추도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