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을 하면서, 박근혜 대표 시절 사무총장과 수행단장을 하면서 미국에 와서 워싱턴, 뉴욕, LA 지역의 동포환영회를 참석하면서 ‘나는 언제 저렇게 주인공이 돼볼까’ 꿈을 꿨는데 오늘 비로소 그 꿈이 이뤄졌다.”

8월 1일(한국 시각) 로스앤젤레스 동포간담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호명한 셋은 모두 그 당 선대 대선후보들이다. 그들처럼 자기도 ‘주인공’이 되었다니, 셀프 세자책봉식이다.

하니, 날아가는 내내 얼마나 설레고 또한 무서웠으랴. 설렘은 알겠는데 무서움은 뭐냐고? 앞선 이들이 받은 대접을 못 받거나 아예 푸대접을 받는다면? 대접의 크기와 색깔, 내용물은 주인이 정하는 것. 어찌 무섭지 않으랴.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여당 대표로서 정당외교의 신성하고 막중한 임무를 안고 방미 길에 오른 그가 엉뚱하게도 방문 첫날 미국인들에게 큰절하고 둘째 날에는 큰절도 모자라 손수건으로 묘비 돌을 싹싹 닦으며 “아이고, 감사합니다.” 곡소리 비슷한 걸 하고, 셋째 날에는 “중국보다는 미국!” 외교적 자해의 곡소리를 내지른 것은 일부 언론이 마사지하듯 국내 보수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대접 주인을 향한 것이다.

강박의 절정은 셋째 날 노출된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전면적인 관계고, 한-중 관계는 분야별 일부의 관계다.” 그날 낮 우드로윌슨 센터에서 한 말이다. “미국은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날 오후 워싱턴 한국 특파원 간담회 발언이다.

1일차 큰절 한 번, 2일 차 큰절 두 번, 3일차 줄서기 공개 맹세!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디딤돌을 딛고 마침내 그는 누구를 만나야만 했던 걸까?

넷째 날인 28일(현지 시각) 오후 1시가 지난 시각 김무성 대표는 대니얼 러셀 국무부 차관보를 만나고 있었다. <김 대표는 “10년 전 당시 박근혜 대표와 와서 라이스 국무장관을 면담했다. 그 이후 10년 만의 정당외교 차원의 방미”라며 이번 방미의 취지를 설명했다.(‘김무성 – 존 케리 면담 불발’. 뉴시스, 7월 29일)> 의역하면 “10년 전 박근혜가 국무장관을 만났듯 나도 이번에 국무장관을 만나 대선후보 (눈)도장을 받고 싶다”쯤 되겠다.

이미 언론이 “28일 김무성 존 케리 면담”을 예고 기사로 내보냈으니 만남은 실제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겠다. 그러나 국무장관은 오지 않았다. <김 대표와 러셀 차관보와의 면담 중 케리 장관이 2시께 러셀 차관보를 통해 “이란 핵협상 관련 의회 청문회가 계속 이어져 김 대표를 만나기가 어렵겠다”고 알려왔다고 배석한 김영우 수석대변인이 전했다.(‘김무성, 존 케리 美 국무장관 면담 무산’. 뉴스1. 7월 29일)> 수모는 이어졌다.

<김 대표는... 이와 함께 “일본의 역사왜곡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아베가 이번 8월15일 기념사에 역사왜곡을 하지 말라고 미국도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셀 차관보는 “이란 협상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지금까지는 종이 위의 협상”이라며 “완전하게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무성 – 존 케리 면담 불발’. 뉴시스. 7월 29일)> 김무성 대표는 분명히 일본에 대해 말했는데 러셀 차관보는 느닷없이 이란을 들이댄다. 왜일까?

<김 대표는 우드로 윌슨센터 강연에서 “미국이 이란 핵 협상을 타결하고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이룩했듯이, 이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간의 전략적 인내를 뛰어넘는 창의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김무성의 ‘워싱턴 정치’…3개 메시지, 1개 방향. 뉴스1. 7월 29일)> “이란 협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쏘아 붙임으로써 “미국이 이란 핵협상을 타결하고”라는 전제를 달고 전개한 “전략적 인내를 뛰어넘는 창의적 대안”이라는 김무성 대표의 전 날 발언을 와르르 무너뜨린 거다. 대북대결정책에 토를 달지 말라는 거다.

이렇게 ‘군기’를 잡은 후에야 러셀 차관보는 김 대표의 일본 관련 언급에 답을 줬다. “한국에게는 미국이라는 친구, 자유시장을 가진 일본이 있다.” 큰절하듯 팍팍 숙이고, 미일동맹에 들어오라는 거다.

케리는 왜 오지 않았을까? <정치권 일각에선 케리 장관의 일정상 김 대표와의 미팅은 일과의 우선순위에 들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김무성, 뉴욕 일정 시작… 반기문 면담 예정’. 뉴데일리. 7월 29일)> 그 ‘더 우선하는 일정’은 이란 핵협상 관련 의회 청문회였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큰절하는 나라가 아니라 당당한 국가를 더 우선하는 거다.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의 8.15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원하는 8.15는 멀기만 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간 대화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새 해 첫 날, 손뼉이 마주치듯 장쾌한 말이 오고가자 1월 2일(현지 시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휴가지 하와이에서 고강도 대북추가제재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한다. 마주치는 손뼉의 한 쪽을 비튼 거다.

<오래전 한 미 국무성 관리의 발언이 떠오른다. “북조선은 밉지만 ‘우리의 존경할만한 적’(our respectful foe)이고 남한은 곱지만 ‘우리가 무시하는 동맹’(our despising ally)이다” ([김동수의 북한 방문기] <4> 건군절을 기념하며 포크댄스를 추던 500명의 젊은이들은… 프레시안 7월 12일)>

미국이 민족의 반과 전쟁 중이고 다른 반은 무시한다면 분단은 영락없다. 북과 미국은 평화로, 남과 미국은 평등으로 갈 때 통일이 영근다. 그리고 평등은 큰절이 아니라 독립에서 온다. 광복 70주년은 분단 70주년이며, 독립염원 70주년이다.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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