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 / 가수, 성공회대 외래교수


도쿄

▲ 2000년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노래 발표로 시작된 재일 조선학교와의 인연은 에다가와 조선학교 모음운동을 거쳐 '몽당연펼'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출처 - 몽당연필]
2007년 봄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이 결성되고 나서부터 일본행이 부쩍 늘었었다. 당시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도쿄 제2조선 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무상으로 임대하던 토지를 반환하고 4억 엔의 임대료를 지불하라는 소송을 냈고 약 3년 3개월에 걸친 재판기간을 거쳐 도쿄 재판소가 1억 7천 만 엔에 학교가 토지를 도쿄도로부터 구입하라는 판결을 내린 터였다.

2000년 가을 재일동포 1세대 계관시인 허 남기 선생의 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에 곡을 붙여 발표한 뒤 매 해 한 두 번씩은 동포들을 만나왔으니 2007년 이후면 동포들을 만나는 횟수가 곱절은 늘은 것이다. 분단의 이분법을 이념의 잣대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빨갱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격한 분단의 시대를 겪어왔고 싸워왔고 극복해 온 존재들이다. ‘통일’이란 두 음절만으로도 가슴을 열어 눈물을 떨구는 그들의 회한을 에다가와 조선학교 운동장을 비추던 그해 추석의 보름달빛만 보듬어주던 시절이었다.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대륙에 대한 갈망이 보다 구체화 되었던 시점이. 분단이 고착화되고 민중들은 고통 받고 해결의 지점은 보이지 않았던 어느 날, 그렇다면 대륙은 어떤가, 거기에도 분단이 없을 리 없겠으나 반도 땅 유구한 과거의 중심이었으니 미래의 중심 또한 거기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똥도 미제가 좋다”는 시골 어른들의 우스갯소리가 사실이 될 만큼 대양(大洋)의존적 삶을 70년 살았으니 수 천년 대륙의 일원이었던 본래의 모습을 그리면 분단의 최대 희생자인 우리 동포들의 상처도 조금은 아물 수 있지 않을까.

시베리아

▲ 대륙의 꿈을 일깨우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들이 거기 있었다.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하바로프스크의 김 알렉산드리아. 이르쿠츠크의 김철훈‧오하묵, 모스크바의 김규면, 상트빼체르부르크의 이범진 그리고 날으는 의병장 홍범도와 스바보드니(자유시)의 열혈 청년들. 그 많던 역사 시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 대학도서관의 한 구석에서나 후세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자료로만 남은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대륙의 복판에 새겨져 있었다.

수 천만 년. 지구상의 헤아릴 수없는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온 거대한 자연의 어머니, 남한 땅의 1/3에 해당하는 거대한 넓이에 세계 민물의 20%를 품고도 방문객들에게는 고작 알뜰한 샤워정도만 허용하는, 그래서 바이칼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없다는 바이칼을 사는 사람들의 순결한 지혜도 있었다.

눈뜨면 광야 그리고 그 지평선의 마지막 점을 향해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또 어떤가.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순백의 속살을 드러내는 자작나무 숲과 숲 사이를 간단히 넘나드는 강줄기들, “저 땅을 왜 놀려? 참 게으른 사람들”이라는 서방세계의 비아냥조차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는 시베리아 대륙은 마치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조용히 미소 짓는 어머니 바다, 바다였다.

그곳에서 나는 고작 70년 분단으로 점철된 반도의 현대사를 다시 생각했다 “반도는 사랑하기에 너무 좁다”는 시인 정일근의 일갈을 되뇌이며.

서울

▲ (사)희망來일이 전개하고 있는 '기다리다 목 빠진 역장' 퍼포먼스에 길을 지나가던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엄마야 깜짝이야 호호호”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여인네의 웃음소리가 경쾌하다. 처음엔 놀랐다가 이내 신기한 듯 자리를 떠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희망역장은 우상이다. 툭툭 건드리며 장난도 치고 악수도 하고 깔깔대며 우르르 몰려와 사진도 찍는다. 지난 4월부터 세종문화 회관 앞에 등장한 기다리다 목 빠진 희망역장 퍼포먼스의 풍경이다.

분단 70년 끊어진 철도로 사라진 통일역장 희망역장이 목 빠지게 남북 철도 연결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행사다 그래서 표어도 “D.M.Z.는 탱크가 아닌 열차가 다녀야 합니다”이다. (사)희망來일의 숙원은 기차를 통해 대륙으로 가는 것이다. 더 이상 한반도는 섬나라가 아니라는 것과 대륙의 통큰 미래가 곧 한반도의 미래여야 한다는 당위를 포함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니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구상이니 온갖 미사여구만 난무하는 현 정부의 행태와는 반대로 조용한 실천을 통해 통일의 꿈, 대륙의 꿈, 평화의 꿈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다.

‘희망의 철길 평화침목 기증운동’도 한창 진행 중이다. 남북 철도를 잇고 노후화된 북한의 철도 시설 개보수를 위한 기금 마련 캠페인이다. 총 5,224km에 달하는 북한의 철도망은 시속 30~40km의 속도밖에 못낼 정도로 열악하다. 이미 2000년 푸틴 대통령과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합의로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사업과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상상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 4세 상호가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온다. 백두대간을 왼쪽에 푸른 동해바다를 오른쪽으로 두고 달리는 동해선 열차를 타고 강릉 원산 청진 나진을 거쳐 러시아 땅 핫산에 닿으면 이윽고 블라디보스톡이다. 상호는 학교 방학을 이용해 유럽을 여행하려 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6박7일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유럽 어디든 갈수 있다.

여행의 끄트머리엔 바이칼호수가 있는 마을 어디쯤에서 S.N.S.를 통해 마음을 나누게 된 브라질의 친구를 만나 평화의 외침은 세계 만민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보편임을 확인한다. 돌아오는 길은 몽골과 북경을 지나 옛 선조들의 본향 만주를 거쳐 신의주 평양 그리고 서울 이다. 마침 서울에 들른 가족들과 남산 길을 걸으면서는 분단으로 인해 대륙을 꿈꿀 수조차 없었던 불과 몇 년 전의 한반도를 이야기한다.

“얼마 안 지났는데도 기억이 까마득해요. 이번 여행 하면서 든 생각은 딱하나, 그때는 왜들 그렇게 야만스러웠지요?”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노래하는 사람
청년문예운동의 시기를 거쳐 노래마을의 음악감독.민족음악인 협회 연주분과장을 지냈고, 다수의 드라마.연극.독립영화 음악을 만들었으며 98년 1집 "사람이 사는마을"2000년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2002년3집"위로하다.위로받다"2006년 4집 "기억과 상상"등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2010년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출간했다.

현재 시노래 운동"나팔꽃"의 동인으로 깊이있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음악을 지향하고있으며 성공회대학교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사)희망來일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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