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북기로 유명한 재미동포 신은미 선생의 일본 순회 통일토크 콘서트는 조선대학 방문으로 마무리됐다. 신은미 선생 부부가 조선대학교를 방문, 꽃다발을 받고 장병태 학장과 포즈를 취했다. 맨 왼쪽이 필자. [사진 - 조선대학교 출판부 전현철]
신은미 선생의 일본 일정은 조선대학교 방문으로 마무리된다.

요코하마에서 강연회를 끝내고 신나게 뒷풀이도 치르고 또 언젠가 보자며 서로 껴안으며 악수하며 헤어졌건만 왠지 또 보고싶어져 나도 그녀가 방문한다고 하는 내 모교로 부랴부랴 가보기로 하였다.

떳떳한 모습으로 선 우리 모교는 늘 변함이 없고 그 언제나 포근하며 따뜻하다. 훈훈한 바람을 타고 신 선생이 대학을 찾아오니 교정에 또 아름다운 꽃이 한송이 핀 것 같다.

이번 순회공연이 도쿄, 가나가와, 오오사카, 고베 등 일본의 주요도시에서 열렸는데 그녀는 방문하는 곳마다에서 조선학교를 방문하기를 뜨겁게 원했다.

가나가와 강연회를 준비하였을 때 관계자가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가나가와는 세계에 이름난 항구도시 요코하마를 껴안은 곳인데 오신 김에 어디 방문하기를 원하시지는 않으냐” 물어봤더니 “조선학교를 찾아 가보고 싶습니다”란 한마디 답만 돌아왔다 한다.

▲ 민족의 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광개토호태왕비 앞에서 한 컷. [사진 - 통일뉴스 배안 통신원]
민족적인 것을 바라며, 누구보다도 민족의 얼을 지키고 싶어하며, 또 민족의 정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것은 해외에 사는 동포들의 공통분모인 것 같다.

이런 민족적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민족교육은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지만 이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해외동포들의 공통의식인 것이다. 그녀 또한 그것을 잘 아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우리의 말과 글도, 민족정신도 자연히 익혀지지도 키워지지도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아는 그녀이기에 조선대학교 방문은 그만큼 더 의의가 크다는 것을 얘기해 준다.

신은미 선생 일행을 조선대학교 학장, 부학장을 비롯한 교직원, 학생들이 환영한다. 서로 초면인 것 같지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조선대학은 도쿄 교외인 고다이라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대학은 1956년 4월 10일에 창립되었고 내년에 환갑을 맞게 된다. 이는 재일동포 자녀를 위한 민족교육의 최고학당이며 이 대학의 설립은 재일동포 사회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통일조국의 미래를 지닌 우리 민족의 희망을 꽃피우는 대학인 것이다.

▲ 민족교육의 생생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는 신은미 선생 부부. [사진 - 통일뉴스 배안 통신원]
이 대학이 있으므로 하여 우리 재일동포들은 동포사회를 이어갈 새세대 교육을 담보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도 능력있는 새세대 리더들을 육성할 수 있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대학의 면모를 갖추었다 하기에도 곤란한 초라한 교사에서 시작되었으나 대학에는 차츰 새조국 건설을 위하여, 동포사회를 위하여 살며 일할 거라는 일념을 안은 청년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민족교육의 화원 속에서 고등교육을 실시하고 싶어했던 우리 동포들, 특히 청년들의 요구는 1959년 6월 지금 현재 위치하는 도쿄도 고다이라시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일대 비약을 이루게 된다.

1957년부터 일본에서의 민족교육발전을 위하여 북에서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보내져 오게 된 것이다. 그중의 제2차 교육원조비(1억 51만엔)와 3,4차 교육원조비에서 5천만엔씩 모두 2억 51만엔이 우리 대학의 새 학사 건설기금으로 쓰이게 되었고 우리는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해외동포들을 위한, 해외동포들에 의한, 해외동포들의 고등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대학은 창립 당시로부터 오늘까지 13,000명의 졸업생들을 배출시켰고 그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남과 북, 널리 해외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 신은미 선생 부부가 조선대학교 교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조선대학교 출판부 전현철]

대학 교직자들과의 인사를 나누고 난 다음 일행은 기념관으로 향한다. 안마당을 거쳐 지나가면서 대학의 교육이념, 연혁 등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다.

강당 앞의 잔디가 깔려진 마당에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모여 앉는다. 소풍 나온 모양인지 다 같이 모여앉은 모습이 예쁘다.

안내하신 선생님 이야기로는 초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조선대학교를 찾아서”란 제목의 글이 실려져 있는데 도쿄 근교에 있는 우리학교 학생들은 이 과목을 배우는 시기가 되면 대학을 찾아오게 되어 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그랬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일행은 기념관으로 들어선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손님들을 맞아주는 이는 갑옷 입고 말을 탄 고구려의 늠름한 병사이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든든해진다.

이 기념관은 대학 창립 25돌을 맞아 1982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여기에는 조선역사박물관과 조선자연박물관이 설치되어 있어 주로 북에서 보내 온 역사유물 500여종과 자연박물표본 2000여종이 전시, 관리 되어있다.

신 성생은 감탄을 금하지 못 한다. 북에서도 귀한 역사유물들을 이 대학에 보낸다는 북의 용단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오로지 민족을 알고 사랑하고 민중을 위하여 살며 일하는 인재를 해외에서 육성하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북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정대세가 이 대학 졸업생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일이다. 동포사회에서 나서 자라 일본에서, 남과 북, 해외에서 활약하는 졸업생은 정 선수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주로 동포사회 내에서 활약하던 졸업생들이 지금은 체육인이며 예술인이며 학자며 활동가며 기업가들이 되어 세계를 향하고 있으며 또 각자 활동을 통해서 우리 민족교육을 빛내이고 있다.

금수강산 내나라에 사회주의 꽃이피니
바다너머 이땅우에 우리대학 높이섰네
백두영봉 기상이냥 무사시노 굽어보며
조국영예 자랑하듯 그이름도 조선대학

젊은가슴 희망품고 교정안을 들어서니
조국사랑 넘쳐풍겨 따사로이 안아주네
무쇠팔뚝 두다리에 불을뿜뜻 용기솟고
우리심장 붉은심장 불덩이로 타오르네

참으로 우리 대학은 이 교가에서 불리워지는 것처럼 백두영봉의 기상을 이어받은 우리의 대학인 것이다.

신은미 선생을 뵙고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기대를 안고 전교생, 전교직원들이 오후 1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 무대 위에서 강연하고 있는 신은미 선생. 3대헌장기념탑이 무대 배경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배안 통신원]
강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지나가는 학생들마다 신 선생에게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하며 인사를 한다.

“저 선생님께서 <오마이뉴스>에 올리신 글 다 봤답니다. 말씀 잘 들을게요.”
어떤 여학생이 신 선생에게 좀 수줍은 듯 전하고 강연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신 선생도 “오! 그랬어요? 고마워요”하며 답한다.

무대 위에 오른 그녀는 역시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축복한다.
순회강연 하면서 방문하게 된 각 지방에서 만난 동포들, 방문한 조선학교들, 거기서 배우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조국과 통일의 미래를 보게 되었다는 감상을 얘기한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세워 체계적으로 민족교육을 실시해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대학까지 세우고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 온 역사는 아주 값있는 것이며 우리 민족의 재산이며 보물인 이 대학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 감사하며 여기서 보고 느낀 것들 잊지 않을 거며 어디를 다녀도 많이 자랑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민족교육을 시작하고 지켜온 수많은 동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고 하니 장내에 박수가 크게 울려 퍼진다.

 

▲ 학생들이 그녀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는지 강연장은 물뿌린 듯 조용하다.[사진 - 통일뉴스 배안 통신원]

학생들이 그녀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는지 강연장은 물뿌린 듯 조용하다.
하지만 강연장 어디서나 그녀가 보여준 사진을 여기서도 소개시키기 시작하자 장내는 웃음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디서 춤추는 사진이 소개된다. 그녀 얘기론 모란봉으로 산책하러 나가니 동네 아줌마들이 서클 활동을 하는지 춤판이 벌어졌는데 대뜸 합세하여 신나게 한판 춤추었다는 것이다.

“제가 어디 유럽 나라나 또 다른 나라를 방문하다 누가 춤춘다고 뛰어 들어가서 춤을 출 수가 있겠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서 그럴 수 있는 거죠”하고 얘기하자 청중들이 하나가 된 것처럼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녀의 말 속에서 느껴오는 가장 귀중한 엣센스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기에,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을 나눌 수 있고, 나라가 둘로 동강난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며, 가족과 친구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수 없는 설움이 가슴에 맺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많은 아픔과 설움을 넘어서려면 통일에로 향해야 한다는 뜻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 배어 있다.

그녀는 “여기 오니까 우리말로 얘기하고 정을 나눌 수 있어 고향으로 온 것 같애요. 남쪽으로 가고 싶어지면 이제는 일본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만났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우리말이 조선어나 한국어, 코리안이 아니며 더군다나 한글어가 아니다. 우리말이 우리말이고 우리의 정은 민족의 정인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다시금 마음에 새겨본다.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제 이름 하나 제대로 입밖으로 내놓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성도, 가족들이 지어준 이름까지 다 잃어버린 민족이었던 것이다. 우리말, 우리글은 파묻혀버리고 우리의 역사, 우리의 민족문화는 왜곡되어 날조되어 가면서 언젠가 그 찬연한 빛은 바래지고 동방에 이름난 영광의 민족으로서의 나날은 잊혀지고 잃어버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허나 그 암담했던 그 시절에 쭈그려 앉듯이 지내던 우리 동포들은 민족의 뿌리와 씨앗을 기어코 지켜내고 만 것이다. 광복이란 양춘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후대들에게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번 무너졌다한들 억천만번 다시 일어서 우리의 것을 다시 찾으려는 민족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의 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우리대학 학생들이 민족의 희망이며 자랑이라 거듭 말한다.
분단의 설움을 넘어서 우리가 결탄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뜨거운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하는 모습은 그 날씬한 몸매와는 어긋나 그녀의 억세고 굳센 결심을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따뜻한 사랑의 정과 단호한 결심을 우리에게 전하고 그녀는 일본 일정을 끝내고 다음 행선지 평양을 향하여 일본을 떠났다.

▲ 조선대학교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신은미 선생. [사진 - 통일뉴스 배안 통신원]
재일동포사회는 지금 결코 순탄한 환경에 놓여있다 할 수 없다.
남북의 분단은 재일동포사회의 분단이 되었고 세대가 몇대로 바뀌어지면서 남에서나 북에서나 희망을 찾을 수 없게 된 많은 동포들이 동포사회를 떠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본 순회강연회를 준비하면서 그런 동포들 역시 남북분단의 설움을 안고 통일에 대한 불씨를 안고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도 강연장에 찾아 온 것이다.

그리고 통일운동에 있어서의 세대교체는 기존세대들의 숙제가 된지 오래다.
더 이상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져서는 안 되는 분단의 현실은 통일운동이 원만하게 다음 세대에 이어져야 한다는 모순을 끌어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언젠가 될 거지”, “누군가 할 거지”하여 남들 일처럼 여겨 온 것도 사실이다. 통일이 희망이란 이름 밑에 밀어붙여져 사람들의 삶과 먼 곳에 위치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강연회는 그런 의식을 깨뜨려 버린 아주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강연장에는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여러 세대의 동포들이 모여 들었고 그들의 마음속 깊이에서 잠들던 통일의식이란 눈을 다시 뜨게 하였다.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선생이 일본 순회강연하면서 남긴 것은 북에 대한 새로운 지식, 관점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느슨해진 재일동포들의 통일의식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또 고무해주기도 한 것이다.

이하 한 재일동포 여성이 보내 온 감상문을 소개한다.

밝은 미소와 장내를 울리는 맑은 목소리가 장내에 울리기 시작하지마자 마음이 몹시 끌렸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낭만에 넘친 힘있는 한마디 한마디는 내 마음을 삽시에 사로잡았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너무도 소박했다.
그 소박한 말들에는 진실감이 가득했다.
때로는 소리 내고 웃으며 어떨 때는 눈시울을 닦으면서 내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다.
자주 귀에 들려온 말들이었다.
그런데 가슴 깊이 스며드는 거짓이 없는 성실한 이야기들.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봤다.
통일은 그 누가 이룩해 주는 게 아니다는 걸.
서로가 만나고 손에 손을 잡아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걸.
잠깐 동안은 미워했었어도 서로가 뜨겁게 사랑을 하고 해결하고 풀어야 한다는 걸.
작은 힘이나마 나도 그 한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알게 해준 귀한 시간이었다.
2015.6.24
박 청 순

그렇다 통일은 누가 해주는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통일을 바라며 통일을 생각하며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동하여야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동포들을 만나고 싶다던 신은미 선생.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서로 잇게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통일에로의 지름길인 것이다.

초여름에서 여름으로 계절은 흘러가려 한다.
민족의 지맥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얼어붙은 장벽도 우리 민족의 소원이란 뜨거운 정열을 앞에 두고서는 녹아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도 차츰 더 더워지며 열기를 띠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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