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열린 65주기 희생자 위령제에서 한국전쟁 당시 학살을 재현하고 있는 <마당극단 좋다>의 추모극 ‘골령골의 비가’.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제단에 헌화하며 위패를 가리키고 있는 한 유족.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가 주관한 ‘제65주기 16차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전국에서 모인 유족과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7일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1번지(옛 골령골)에서 열렸다.

이날 합동위령제는 지난 2월 발굴한 20여 구의 유해를 임시유해안치소에 안치하는 것으로 시작해 진혼무와 헌작, 천도제 등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2부로 열린 추모식에서는 산내학살 경과보고, 김종현 산내유족회 회장의 인사말과 참석자들의 추도사, 추도시 낭송, 추모극과 추모노래 공연 등이 이어졌다.

▲ 올해 2월~3월초 발굴한 유해 20여 구를 임시 보관 중이던 컨테이너에서 운구해오는 유족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제례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천상에서 꽃피우소서’ 진혼무를 추는 금비예술단 전연순 단장.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초헌 헌작하는 김종현 산내유족회 회장.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희생자 위패. 한국전쟁기 최대 7천여 명의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들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513명에 불과하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지역 건축가의 기부로 설치한 임시안치소에 모신 20여 구의 유해. 최근 인근 매장지의 유해 훼손을 방치했던 대전 동구청은 임시안치소에 대해 불법건축물이라며 철거명령까지 내려 참석자들로부터 ‘패륜 행정’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올해 2월말 시민들의 자원봉사로 시험 발굴하던 매장지는 인력과 재원 부족으로 1주일 만에 다시 덮고 수십 미터의 띠를 입혀야했다. 65년 연좌제의 터널을 지나온 유족과 시민들이 스스로 학살지를 찾고, 눈앞에서 유해를 파다가 덮어도 반인륜 학살의 주체인 국가는 여전히 모르쇠다. 왼쪽의 국기가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원불교대전충남교구의 희생영가 특별천도제.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위령제 주변에 내건 현수막.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올해 2월의 유해발굴 결과를 설명하는 박선주 발굴단장.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대전산내 사건은 역사 속에 묻혀질 사건이 아닙니다. 국가와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발벗고 나서야 할 일입니다. 억울한 영령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유족대표인사와 추도사를 하는 김종현 산내유족회장(왼쪽)과 김광년 한국전쟁유족회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학교현장에서도 사건을 상기시켜 남을 배려하는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처음 참석해 추도사를 하는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왼쪽). “아직도 우리 온 사회가 골령골입니다.” 이어지는 각계 시민사회단체의 추도사.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추도시 ‘무덤을 지키는 소나무’, ‘골령골의 솟대는 어이 우는가’를 낭송하는 신순란(왼쪽), 전숙자 유족.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슬픔에 잠긴 유족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가수 정선영 씨의 추모노래 ‘내 영혼 바람 되어’.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헌화하는 시민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한편, 지난 6월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대전산내 유해발굴 보고 및 입법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입법토론회에서 민간인희생자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유해발굴과 추모사업 등의 향후 과제에 대해 발제하는 김민철 민족연구소 책임연구원(오른쪽,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총괄팀장), 노용석 한양대학교 교수(가운데)와 민변 이동준 변호사.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기념사진.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대전 산내 학살은?

대전 산내 학살현장에서는 지난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3차 : 7월 6~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미군 24군단 소속 첩보부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앞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4·9통일평화재단, 포럼진실과정의,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대전지역 19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월 23일부터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에서 3월 1일까지 7일간 일정으로 유해를 발굴했다.

당시 박선주 발굴단장(충북대학교 명예교수)은 발굴결과에 대한 현장설명에서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의 희생자들은 7,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화위가 진실규명과 신원을 확인한 희생자 수는 493명에 불과했다”며, “2007년에 있었던 진화위의 유해발굴에서는 34구의 유해만 발굴했을 뿐, 가장 많은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발굴을 추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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