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농성장으로 변한 통일부 앞마당

▲ 광복70돌 준비위원회가 4일 통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15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만나야 통일이다. 조건 없이 민족공동행사 보장하라!”
“정부는 굴욕외교 청산하고 남북관계 개선하라!”
“정부는 대북정책 전환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라!”
“6.15행사 보장으로 관계개선 물꼬 터라!”

광복 70년, 6.15공동선언 발표 15년을 맞아 민간단체들이 총집결해 6.15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 위기에 처하자 4일 오전 통일부 앞으로 몰려와 이 같은 구호를 외치며 장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기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더해 시민사회와 종교계 등이 포괄된 ‘광복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광복70돌 준비위)가 통일부가 있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4일까지 장기농성에 돌입한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주민접촉이나 북한 방문 등 인적교류에 관한 허가권을 쥐고 있는 통일부가 민간단체에게는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나중에 방북 불허 조치 등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70돌 준비위가 정부를 향해 직접 항의농성을 벌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지난 1일 6.15공동행사의 분산개최를 제의해왔고, 이제 6.15기념일은 열흘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6.15북측위원회는 1일자 서신에서 “6.15서울공동행사를 달가와 하지 않고 파탄시키려는 남측 당국의 근본립장에서 변화가 없는 한 설사 행사준비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한다 해도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은 명백하며 오히려 6.15공동행사가 성사되지 못한 것이 북남민간단체들 사이의 의견 대립 때문인 것처럼 불순한 언질만 주게 될 것”이라고 분산개최 제의 배경을 밝혔다.

4일 농성돌입 기자회견장에서 이창복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에게 ‘북측에서 분산개최를 제의해 왔는데, 왜 우리 정부를 향해 요구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분산개최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만든 것도, 그들(북측) 자체만의 판단이 아니라 서로(남북 당국)가 불신하는 가운데서 그러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광복70돌 준비위는 각 지역과 부문별로 돌아가며 14일까지 통일부 앞 농성장을 지킬 예정이며, 매일 오후 7시에는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 6.15공동행사 성사를 관철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창복 상임대표는 “14일까지 민족공동행사가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또,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도 기대해본다”면서 “시종일관 민족공동행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선양회의에 전달된 남측 당국의 ‘희망사항’

▲ 6.15남측위원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은 지난 1월 30일 정기총회를 개최, 올해 6.15, 8.15 민족공동행사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결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는 6.15 15주년, 광복 70주년 등 이른바 ‘꺽어지는 해’ 정주년으로 정부도 광복 70주년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올해 6.15, 8.15 기념행사는 남북해외가 함께하는 민족공동행사로 치러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6.15남측위는 지난 3월 중국에서 6.15북측위 등과 사전협의를 거쳐 4월 1일 광복 70돌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6.15공동행사를 서울에서 치르겠다고 기세 좋게 발표했다. 발족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6월 15일 서울에서 만나요’라는 카드섹션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이어 4월 9일 ‘광복70돌 서울 준비위원회’가 결성돼 ‘평화통일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를 개최하고 1만 명의 서울시민 통일응원단(준비위원)을 모집하겠다고 밝히는 등 ‘서울 6.15공동행사’ 추진은 거칠 것 없어 보였다.

그러나 5월 5일부터 중국 선양(심양)에서 진행된 남북해외 대표자회의는 예정된 회의 일정을 하루 연기해 7일까지 협의를 가졌지만 결국 6.15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는 합의하지 못한 채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막을 내렸다.

남측 당국은 회의 첫날인 5일 ‘6.15 평양, 8.15 서울’ 개최안을 강력히 희망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왔고, 북측은 이같은 남측 당국의 의도에 ‘의구심’을 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조국해방 70돌 민족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회’(이하 북측 준비위)를 꾸려 회의에 참석한 북측은 ‘6.15 서울, 8.15 평양’ 개최안을 당연한 전제로 알고 회의에 나왔던 것.

남측 준비위는 ‘6.15 서울’을 기본으로 8.15공동행사는 서울이나, 서울-평양 동시개최안 등을 제시했지만 북측을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 준비위는 5월 8일 선양회의 결과를 전하는 기자회견에서 6.15공동행사는 “사실상 서울에서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북측과 개성에서 실무접촉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측 준비위는 8일 동시에 발표하기로 한 공동보도문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고, 이후 남측 준비위가 19,20일 개성실무접촉을 제안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북측 준비위의 부정적 기류를 감지한 남측 준비위는 21일 상임대표회의를 통해 ‘6.15 서울, 8.15 평양’ 개최와 함께 8.15 서울행사에 북측 인사들을 초청한다는 최종 입장을 정해 북측에 다시 전달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남측 광복70돌 준비위 내부에서도 지도부의 협상 과정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선양회의에서 ‘6.15서울, 8.15평양’을 합의했더라면 이런 혼란이나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이창복 상임대표는 “내용적으로는 합의를 했다. 다만, 외부 표현하는데, 다시 말하면 보도문 작성하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큰 틀에서 ’많은 합의를 했다’고 표현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북측 준비위는 이달 1일 서신을 통해 “남측당국은 심양실무접촉에 끼여들어 의도적으로 장애를 조성하고 지금 이 시각까지도 이번 공동행사가 ‘민족동질성회복과 실질적 협력의 통로 개설을 위한 순수한 사회문화차원에서 추진되여야한다’느니 뭐니 하고 있으며 특히 북,남,해외 3자 사이에 이미 합의한 6.15민족공동행사를 서울에서 한다는 것에 대한 립장을 아직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이러한 점을 심중히 고려하여 6.15공동선언발표 15돐 기념 민족공동행사를 불가피하게 각기 지역별로 분산개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상 최종 통보를 보내왔다.

▲ 5월 5~7일 중국 선양에서 남북해외 준비위 대표자회의가 열렸지만 6.15, 8.15 민족공동행사 개최 장소를 확정하지 못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공동행사 추진 일지>

구분

내용

주최 및 장소

2015.1.30

6.15, 8.15 민족공동행사 반드시 성사

6.15남측위 10주년 결의문, 서울

2015.3.4

6.15, 8.15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을 성대히 개최

6.15민족공동위 10돌 공동성명

2015.4.1

광복70돌 준비위 발족
6.15공동행사 서울 개최 발표

광복70둘 준비위, 서울

2015.5.5~7

6.15, 8.15 민족공동행사 협의
(남측 정부, ‘6.15평양 8.15서울’ 제시)

남북해외 준비위 대표자회의, 중국 선양

2015.5.8

공동보도문 발표
- 6.15~8.15공동운동기간 설정
- 6.15, 8.15 개최장소 명기 안 됨

남측 광복70돌 준비위 기자회견
- 6.15공동행사 서울 개최 ‘사실상 합의’

남측 준비위, 서울
북측 준비위, 발표 안 함

2015.5.19~20

개성서 실무접촉 제의, 무산

남측 준비위 제안
북측 준비위 무반응

2015.5.21

‘6.15서울, 8.15평양’ + 8.15서울행사에 북측 참여 요청안 확정

남측 준비위 상임대표회의, 서울

2015.6.1

6.15공동행사 분산개최 제의

6.15북측위, 6.15남측위와 해외측위에 서신

2015.6.4

통일부 앞 농성 돌입

남측준비위 기자회견, 통일부 앞

(정리 - 통일뉴스)

남북관계 현주소, OSJD와 미사일 발사

▲ 한국의 OSJD 회원국 가입 투표를 하루 앞둔 3일, 태안반도 안흥사격장에서 사거리 500km 이상인 탄도미사일 현무-2B가 시험발사 됐다. [사진제공 - 국방과학연구소]
이번 6.15,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 문제를 둘러싼 엎치락뒤치락은 민간통일운동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북 당국간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남북 민간교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이다.

물론 남측 당국을 대표하는 통일부도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부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민간과 ‘6.15 평양, 8.15 서울’ 안을 협의한 바 있다”며 “왜 6.15서울 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또한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온 상황에서 보수단체들에 의한 불상사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이냐”고 ‘6.15 서울’안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WCD(Women Cross DMZ) 행사를 위해 세계적 여성평화활동가들이 지난 5월 24일 DMZ를 넘어 방남하는 과정에서도 보수단체와 언론은 쌍심지를 켰고, 그나마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사고를 예방했다.

남측 정부가 민간 공동행사의 개최 장소 문제 등에 너무 간섭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 당국자는 “언제부터 민간이 정부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느냐”며 “정부는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일부 임병철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우리 단체의 접촉 제의를 지속 회피하면서 순수한 사회문화교류 차원의 공동행사 개최를 거부하고, 이러한 행사 무산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광복70돌 준비위가 통일부 앞 농성에 들어간 4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또다른 어두운 소식이 전해져왔다. 유라시아 철도운송을 총괄하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의 제43차 장관회의에서 한국은 정회원 가입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반대와 중국의 기권으로 무산된 것.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이 허공에 뜬 셈이다.

그나마 남북간 협력사업으로 첫 손가락에 꼽혔던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의 토대랄 수 있는 OSJD 가입이 실패로 돌아가자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군은 OSJD 가입 표결 전날인 3일,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500km 이상의 국산 탄도미사일 현무-2B를 충남 태안 안흥시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시험 발사했다. OSJD에서 북한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6.15공동행사 열릴 수 있을까?

▲ 광복70돌 준비위원회는 4월 1일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6.15민족공동행사의 서울 개최 추진을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70돌 준비위는 통일부 앞 농성을 통해 6.15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막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성사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승환 광복70돌 준비위 대변인은 “우리가 요구하는 핵심사항이 ‘전제조건 없는 공동행사 보장 입장을 정부가 구체적으로 표시하라’는 것”이라며 “정부로부터 아직 구체적인 반응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통일부가 ‘전제조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순수한 사회문화교류 차원의 공동행사’란 사실상 6.15공동행사를 정치행사로 규정하고 기념행사를 열지 말라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나 문화예술 축제 방식 만 허용하겠다는 것.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늘 민간공동행사의 걸림돌이 돼 왔던 ‘선별 배제’ 문제다. 정부가 범민련남측본부 성원 등 일부 진보적 인사들에 대해 북한주민접촉신청을 불허함으로써 사실상 6.15공동행사에 참여할 수 없도록 배제시키는 것. 실제로 지난 5월초 선양 대표자회의 당시에도 선별 배제가 이루어졌다.

정부의 '전제조건'에 맞서 광복70돌 준비위는 공동행사 성사를 위해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해외측 준비위도 성사를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6.15공동행사가 분산개최 될 경우 공동성명 등을 통해 남북해외는 6.15 15주년을 맞는 공동의 입장을 서울과 평양, 해외에서 함께 발표하는 것으로 정치적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 광복70돌 준비위원회는 통일부 앞에서 오는 14일까지 철야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70돌 준비위가 4일 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각계의 민간교류, 민족공동행사를 조건없이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지난 7년여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인해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높아진 군사적 긴장과 동북아 질서 주도권의 상실이라는 현실밖에 없다”고 지적한 대목은 귀기울일 가치가 있다.

사실 통일운동이 좋은 정세에서 정부의 협조를 받으며 남북교류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불과했다. 고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시구처럼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의 현실은 여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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