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 (한반도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전 통일연구원 원장)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남·북·미 간 대립적 상호작용(conflictive interaction)을 줄이고 협력적(cooperative)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 북한은 조속히 남북/북미간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여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진정성 있는 조치를 마련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3국 간 대립이 아니라 협력적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새 전략이 상생의 길이며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지금 한반도 북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대내 정치의 불안정성은 물론 대남 위협의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이 5월 1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군부 제2인자인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을 4월 30일 처참하게 처형하였다고 한다. 북한이 TV를 통해 현영철 모습을 내보내고 있어 국정원 발표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북한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아 사실일 개연성은 높아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진두지휘 하에 획책되고 있는 북한의 대남 군사적 도발 위협 또한 날로 증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성공하였다고 보도했으며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미 당국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 한국배치의 명분을 주는 꼴이 되고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4월 말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끝나면 한반도에 다시 해빙의 봄이 찾아 올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측을 무색케 할 만큼 한반도 정세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으로 인해 전문가 들 사이에서는 자칫 남북 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한반도 위기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통상 북한은 미국의 책임으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책임으로 돌려왔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비방하고 상대의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남·북·미 3자의 입장과 정책 차이에서 한반도 위기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3국의 정세인식이 다르고 그로 인해 추진하는 정책이 상충됨으로써 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면 관련 당사국 모두가 자성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모색하여야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2011년 말 집권한 후 3년 반 동안 무려 70여명의 핵심간부들을 처형 혹은 숙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 제1위원장이 공포정치를 통해 유일영도체제를 유지하고 체제의 불안요소를 척결하려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리더십에 회의를 느끼는 당·군․정 핵심간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보여준 통치행태는 3대에 걸쳐 적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 포위공격강박증(siege mentality)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비정상적이고 위험스런 행동이다. 북한 당국이 연일 대미/대남 비난 수위를 높여가면서 한미 양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 역시 외부의 적을 만들어 국내정치를 안정시키겠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이에 따라 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으며 기대했던 남북대화는 5월 말 현재까지도 아무런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새로운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못하면 남북관계의 복원은 점점 더 멀어져 가게 될 공산이 크다. 북미대화 역시 수년째 겉돌고 있다. 남북대화 재개와 북미관계 개선의 걸림돌은 상호신뢰 부족으로 양보하고 타협하려는 의지 결여가 핵심이다. 북쪽은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을 고집하고 있고 남쪽은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먼저 열어 핵심 이슈들을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하자고 주장해 상이한 접근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 시점에서 북미관계는 냉전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냉랭하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한을 어떻게 대화의 장으로 유인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들을 고집하고 있어 남북대화가 재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3가지 전제조건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대북 전단 살포 중지 △5.24 조치 해제 등이다. 지난 1월 북한은 북미 대화 유인책으로 금년 봄에 예정된 키리졸브와 독수리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과 제4차 핵 실험 중단을 맞교환하자고 제의하여 다소 변화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은 3가지 전제 조건은 물론 1월에 제의한 합동군사훈련 중단과 핵 실험 중단 맞교환 제의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이 제의한 일련의 조건 중 어느 것도 한미 양국이 당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남한은 이런 핵심 이슈들을 남북대화를 통해서 함께 풀어가자고 역제의하였다. 그런데 북한은 대화의 전제조건들만 고집하고 있어 안타깝다.

북한이 대화의 3대 전제조건을 계속 고집한다면 남북대화는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남북대화의 불씨를 지피려면 북한의 전제조건을 남쪽이 수용해야 하는데 그럴 개연성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이와 같이 판에 박힌, 전제조건을 앞세운 제안보다 현실적으로 한미 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상을 제시하여 북미대화를 유도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의 이익에 훨씬 더 부합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말로만 대화하겠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그러면 북한은 왜 대화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할까? 이에 대해 필자는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불량국가(rogue state)나 적대국가로 낙인찍혀 포위당하고 있다는 포위공격 강박증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북한이 자기 방어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정신적 강박증으로 부터 해방된다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을 한미 양국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 대북 대립적 상호작용을 줄이고 대북 협력적인 상호작용을 늘리면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외교적 방책으로 북한에 ‘특사’를 보내 남북대화의 돌파구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미국도 과거에 했던 것처럼 뉴욕 채널을 통해 대북 물밑 접촉을 최대한 구사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유인해야 한다.

북한 또한 핵무기를 갖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바탕 위에서 판에 박힌 방식이 아니라 상황을 개선할 전향적인 새로운 전략을 짜야한다. 필자가 기회 있을 때 마다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촉구한대로 성급하고 현명치 못한 군사적 도발행위를 자제하고 북미 간 2.29공동합의(2012)를 존중하여 제4차 핵 실험이나 장(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군사적 도발 위협을 자제해야 한다.필자는 금년 6월부터 9월 사이가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라고 본다. 따라서 한미가 8월 을지프리덤 가디언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한도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을 중단하는 조치를 동시에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만약 이 같은 조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한미 양국이 합동 군사훈련의 범위를 제한 혹은 축소하고 훈련기간을 단축하여 먼저 대화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러한 결정을 미리 공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역시 한미 양국의 선의적이고 선제적인 조치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희망한다.

금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에 즈음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인공위성) 발사나 4차 핵 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4차 핵 실험 중단 그리고 핵 동결 논의를 위한 6자회담 재개 제안을 수용할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하며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이 평화와 통일의 원년이 되길 기원한다.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1969).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국제정치학 교수(1969-1999);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1995-1999); 통일연구원 원장(1999-2000).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미국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한반도 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 (Los Angeles)회장.
30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200편 이상의 학술논문출판;
주요 저서: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1999).
공저: 한반도평화체제의 모색 (1997)등; 영문책 Editor & Co-editor: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