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보영/시선-장과로/디지털회화/2014. [자료사진 - 심규섭]

가끔 난세를 극복하고 시대를 이끌어줄 영웅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현실이 어렵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애매할수록 이런 마음은 간절해진다.
서양에서는 숱한 영웅들이 나타나 세상의 길을 열었다. 어릴 적 읽었던 많은 위인전은 미래를 열어 주었으며,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킨 영화 속 불멸의 영웅들은 가슴을 뛰게 하는데 충분했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과 같은 유학문화권의 나라에서는 숱한 귀신이 존재하지만 정작 유일신은 없다. 특히 주자성리학을 완성시킨 조선에서는 그 흔한 귀신도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몽달귀신, 도깨비, 처녀귀신 따위는 거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귀신들이다.

또한 난세의 영웅도 없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싸워 명성을 얻자 선조는 노심초사한다. 다른 선비들이나 관료들도 백성들에게 추앙받는 이순신을 두려워했다. 영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몸부림이 있었다. 조선시대를 풍미하고 이끌었던 사람들은 존경을 받았을 뿐이지 영웅으로 추앙된 적은 없었다.

이랬던 조선에서 변화가 나타난 것은 영.정조시대이다.
명나라가 망하면서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생겼다. 중국의 어디쯤이라고 여겼던 이상세계의 모습이 금강산과 같은 조선의 풍경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이상세계에 사는 존재가 신선이면 조선에 사는 선비가 신선이 되는 합리성을 얻은 것이다.
특히 정조의 개혁정치와 맞물리면서 <신선도>가 본격적으로 창작되고 수용되기 시작한다.
단원 김홍도는 탁월한 창작기량으로 <요지연도>에 나오는 신선의 모습을 조선의 방식으로 수용해 재창작하고 대중화시키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신선이나 귀신 따위를 믿지 않는 선비들을 설득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홍도는 신선과 선비를 하나로 묶어 선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선에서 선비는 정치인이자 문인이며 학자였다. 선비는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타락한 권력과 재물을 경계하고 자연의 질서에 맞게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은 곧 신선처럼 그려졌다. 선비가 곧 신선이고 신선이 곧 선비가 된 것이다.

선비들이 자신을 신선과 동일시 여겼다면 백성들은 신선이 척박한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줄 존재, 즉 영웅으로 보았다. 백성들은 상식을 넘어서는 도술과 불로장생하는 능력을 투영하여 자신들을 구원해 줄 존재로 만들어 수용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인 ‘장과로’가 누군지, 뭐하는 사람인지는 솔직히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림만 보면 대략 이 신선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있는 것은 기존의 질서, 흔히 돈과 권력에 저항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현세에서 돈과 권력을 멀리하고 백성들에게 삶의 지혜와 미래를 밝혀줄 수 있는 영웅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가 바로 ‘장과로’와 같은 신선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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