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여성평화걷기 참석자들이 평양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초 계획했던 대로 '판문점' 통과의사를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의미 있는 첫 행사는 오는 24일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WCD) 참가단의 판문점 통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엔군사령부(유엔사)와 한국 정부는 판문점이 아니라 개성을 거쳐 경의선 육로를 차량으로 이동해 줄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노벨평화상 수상자 메어리드 맥과이어를 포함한 30여 명의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은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판문점을 통해 DMZ를 넘기로 결정했다”고 분명히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WCD 참가단이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정전체제를 넘어 판문점을 오간 사람들

미국, 스웨덴, 일본 등 다양한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과 해외동포들로 구성된 WCD 참가단이 판문점을 통해 내려올 경우 진풍경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판문점은 인도적 신병인도나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북한 통일운동가의 일방적 귀환 외에 이같은 평화행진이 이뤄진 적은 없기 때문이다.

보통 표류해온 남북 어민들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는 경우가 가장 많고, 1993년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송환에 이어 6.15공동선언에 따라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송환됐고, 2005년 10월 2일 비전향장기수 정순택 유해가 북측 유가족에게 인도되기도 했다.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북했던 문익환 목사는 중국과 일본을 거쳐 귀국해 구속됐지만 전대협 대표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은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과해 내려와 곧바로 구속됐다. 이후에도 김일성 주석 1주기 조문을 다녀온 박용길 장로와 6.15 10주년 평양행사에 참가한 한상렬 목사,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경축 열병식에 참가한 노수희 범민련남측본부 부의장 등이 판문점을 거쳐 돌아와 구속됐다.

이 외에도 1959년 <프라우다> 평양지국 이도운 기자가 귀순해왔고, 가장 유명한 귀순사건은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기습 귀순한 이수근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다. 2012년 10월 북한 병사가 전방부대 초소문을 두드릴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이른바 ‘노크 귀순’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3년 10월 25일에는 월북했던 남측 주민 6명을 북측이 판문점을 통해 인계해주기도 했다.

정전체제의 민낯, 유엔사의 DMZ와 JSA 관할권

▲ ‘Women Cross DMZ’는 국내외 여성 평화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3월 11일 뉴욕에서 '국제여성평화걷기'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처음부터 DMZ를 도보로 횡단하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WCD 참가단은 19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판문점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이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잔재”라면서 “대표단이 판문점으로 DMZ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유엔사 측에 거듭 요청했다.

WCD 측은 이 행사를 기획할 때부터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5월 24일 판문점을 걸어서 통과하겠다는 구상을 세웠고, 지난 3월 11일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같은 구상을 밝힌 뒤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20일 “유엔사와 우리 정부가 협의해 판문점 보다는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내려오면 좋겠다고 WCD 쪽에 권고했다”며 “판문점은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곳이지 민간인들이 출입하는 곳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우발적 사건이라도 안전 문제가 될 수 있는 민감한 곳인데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겠느냐”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비무장지대(Korean Demilitarized Zone, DMZ)는 한국전쟁 이후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 의해 성립된 지대로, 군사분계선(MDL)에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의 범위로 설정되어 있다.

정전협정 제1조(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 ⑽항에는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이, 이북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공동으로 책임진다”고 명기돼 있다. 즉, DMZ 남측 구역은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실정.

더구나 이들이 통과하길 희망하는 판문점은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에 속한다. JSA는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관리하는 군사정전위원회(유엔사측과 북한.중국측으로 구성) 운영을 위해 군사분계선상(MDL)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400m 장방형의 지대다. 유엔사의 직접 관할하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유엔사측은 남북 철도연결 사업 당시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지점에 대해 행정권인 관리권(adminstration)을 남측에 이양했지만 관할권(jurisdiction) 마저 넘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고, 지금도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경의선 육로 통과자들의 명단이 유엔사에 통보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사 관계자는 19일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출입하는 문제이며, 유엔사는 관할구역인 DMZ를 건너는 상황에 대해서만 관여한다는 입장”이라며, “한국 정부의 승인이 났을 때 유엔사는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유엔사와 남측 정부가 WCD 참가단의 판문점 통과를 꺼리는 이유가 유엔사 모자를 쓴 주한미군에 의해 이곳의 관할권이 행사되고 있다는 ‘정전체제의 민낯’이 전 세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전협정에 의해 유엔사가 남측 관할권이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남북이 군사적 대치 상황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여성평화걷기, 평화체제 서막 여나

▲ ‘2015 Woman Cross DMZ 한국위원회’는 4월 23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신변안전보장을 못 받더라도 여성들은 걷는다”고 선언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WCD 한국위원회 실행위원인 안김정애 평화여성회 상임대표는 “오늘 통일부측의 요청으로 면담을 가졌지만, 통일부는 여전히 경의선으로 오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역사적 공간으로서 판문점의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재강조했다.

안김정애 상임대표는 “WCD 국제공동대표단은 이미 어제 오후 북한에 들어가서 전혀 연락도 안 되고, 취할 방법도 없다”며 “그들은 원하는 대로 판문점으로 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WCD한국위원회는 이들이 내려오는 24일 버스 2대를 이용해 판문점으로 마중나가기 위해 유엔사측에 명단 제출을 추진 중이다.

안김정애 상임대표는 “여성이 평화체제의 주체가 돼 정전체제를 깨는데 의미가 있다”며 “유엔사와 정부는 우리가 원하는 바람대로 해주길 원한다”고 촉구했다.

2013년 8월 오토바이를 타고 경의선 육로를 통과한 뉴질랜드인 5명이나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8월 진행됐던 국제오토랠리(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는 모두 경의선 육로를 이용했다.

따라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국제여성평화운동가 30여명이 처음으로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순간은 또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작 WCD 참가단에 해외동포들은 포함돼 있지만 남과 북의 여성들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더구나 남북 당국과 민간은 6.15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 개최 장소를 두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는 것을 환영하며, 광복 70주년 을 계기로 남북의 민간과 당국도 남북을 오가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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