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 (본사 상임고문, 재미 통일연구가)
 

한국의 저명한 남북문제 권위자로 꼽히는 모 교수님이 최근 한 유력 일간지에 실린 칼럼에서 “남북관계 진전이 어려운 근원은 불신에 있다”면서 그 “원죄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 교수님이 65년 전 6월 25일 새벽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의 전후 상황을 어떻게 기억 혹은 인식하게 됐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6.25의 전날인 토요일 밤, 주말휴가로 서울에 나온 내 친구 최 모 대위(개성의 제1사단 소속)의 집에서 밤새 그와 이야기하다가 새벽녘에야 잠들었는데, 곧 1사단에서 보낸 연락병이 최 대위를 황급히 데려가는 통에,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거리에는 벌써 군용 지프차들이 황급히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국군장병들은 즉각 본대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집에 와보니 라디오 앞에 모여 앉은 식구들이 모두 “북괴 놈들이 감히 38선을 처 넘어왔는데 국군이 이를 격퇴하고 북진 중”이라며 “이제 고향 돌아갈 날도 멀지 않았다”고 흥분해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승만 대통령은 줄기차게 북진통일을 주장했었다. 또 신성모 국방장관은 물론 군 장병들도 한결같이 북진명령만 떨어지면 아침은 사리원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그리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소리를 그대로 믿고 있던 우리들 38따라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남의 모든 백성들이, 이제 전쟁이 일어났으니 국군이 곧 북한을 점령할 것이며 이에 따라 분단은 끝나고 나라는 다시 통일된다고 믿고 기뻐했던 것이 그날 아침 서울은 물론 남한 전체의 모습이었다.

이렇듯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을, 좀 놀라기는 했지만 오히려 기다렸던 일이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록 한때나마 초기의 남한 측 반응이었다. 더욱이 6.25 이전부터 줄곧 북진통일 즉 대북침공을 공공연히 절규해온 것이 남한이었는데, 북한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 후 오늘날까지 남북 간 불신의 원죄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쩐지 이치에 딱 들어맞는 것 같지 않다.

다만 남한사람들이 믿었던 국군은 물론 황급히 달려온 UN군마저도 북한군 앞에 맥을 못 쓰는 사태가 전개되자, 이에 당황한 한국과 미국이 북한이 일으킨 전쟁을 “불법남침”으로 규정하고 북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왔는데, 이는 “극비리”에 전쟁 준비를 추진했다가 “불의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남한의 불신의 원인이 됐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남북 간의 불신은 북한에 대한 남한의 불신뿐 아니라 남한에 대한 북한의 불신도 있다는 점이다. 해방 후 남한에 진주했던 미군은 1948년 한국정부가 수립된 후 1949년 철군했다. 그리고는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을 위한 군사원조 요청을 묵살했다. 또한 설사 북한군의 남침이 있더라도 남한군은 능히 이를 물리칠 능력이 있다고 공언했다.

즉 남북 간에 전쟁이 발생해도 미국이 개입할 의사나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북의 남침을 유도하여 한반도에 되돌아오기 위한 미국의 술수였다는 것을 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소련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이 소련이나 중국의 묵인 하에 남침계획을 추진하고 실천했다가 큰 코를 다쳤던 것이다.

이렇듯 미국에게 크게 속은 적이 있는 북한은 남한이 미국에게 매달려 있는 한 남한을 믿을 수 있는 상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의 불신을 해소하자면 북한도 6.25남침 같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하지만 남한도 미국에 맹종하는 자세를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남북 상호간에 동시적으로 신퇴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진주만공격으로 미국에 싸움을 걸었다가 원폭으로 된 서리를 맞고 무조건 항복 했던 일본의 총리가, 며칠 전 미국에 가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은 이 기회에 남한보다 일본과 더 가깝다는 것을 공공연히 보여 주었다.

이런 판국에도 남북은 서로에 대한 불신을 못 풀고 삿대질만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북간도 용정에서 출생했으며, 6.25 때 육군 정훈장교로 입대해 1955년 대위로 예편했다.
1955년-1971년 외무부 재직 중 한일회담과 각종 무역회담에 참여했으며, 1961년 뉴욕대학원에서 석사학위(국제경제학)를 받았다.
1972년부터 미국 LA에서 제조업체를 설립, 경영했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코리언 스트릿 저널, 크리스천 헤럴드, 라성 한국일보, 기자협회보(국내) 등에 통일문제를 위주로 글을 써 왔다.
1990년 제1차 범민족대회 미주동포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1995년에 ‘통일마당’ 창설 회장으로 선임됐다.
현재 ‘6.15공동선언실천 미주본부’ 고문 및 ‘통일뉴스’ 상임고문으로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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