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가도/최지솔/디지털회화/2013. [자료사진 - 심규섭]

[책가도冊架圖]는 책장과 책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정조의 명령으로 청나라에서 서양화법을 공부한 김홍도, 이명기에 의해 [책가도]가 그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급스런 물건을 넣는 장식장을 그린 청나라의 [다보각경도]를 바탕으로 조선의 정서와 미감에 맞는 [책가도]를 완성한 것이다.

모든 이상적 가치가 그러하듯이 학문도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가치이다. 학문의 깊이는 정치나 인격과 같은 사회적 활동을 통해 드러난다. 이런 학문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책가도]이다.

[책가도]는 학문을 사랑한 정조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한 그야말로 정조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책가도]는 책과 책장만 그렸지만 벼루, 붓, 종이와 같은 문방구가 결합한다. 책과 문방구의 결합은 자연스럽고 책만 그리는 단순함을 극복할 수 있는 조형적 요구와 잘 맞는다. 하지만 나중에는 각종 보물이나 상징이 붙은 사물들이 들어간다.
학문 사랑을 넘어 학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가치로 확장한 것이다.

[책가도]는 서양화법이 들어간 최초의 궁중회화이다. 책장은 서양화법의 원근투시법을 이용해 그렸고 그 안의 사물은 우리화법으로 채웠다. 원근투시법은 현실성을 극대화시키고 그 안의 사물들은 이상적 세계를 드러낸다.
책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특별한 일이지만 동서양화법을 결합하여 다른 세상에서는 없는 새롭고 놀라운 그림의 형식을 창안해 낸 것이다.

이 그림은 비교적 초창기 분위기의 [책가도]이다.
책장은 짙은 갈색으로 채색하여 차분하고 엄격해 보인다. 또한 반듯하게 정렬된 책과 세밀하게 표현한 각종 기물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가도]는 사람들의 정서를 교묘하게 파고들며 흔들어 놓는다.
규격화된 책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책과 감정을 이완시키는 각종 사물의 결합으로 정서를 쫄깃하게 만든다. 환상과 현실의 절묘한 조합으로 사람들의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다.

[책가도]는 학문과 공부와 대한 그림이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 출판사, 서점, 서재나 학자들의 방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공부하는 존재’이다. 공부할 힘이 있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것이다.
죽기 전에 [책가도] 한 점 정도는 집안에 걸어두는 것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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