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무사’, 요코하마 역전에 나타나다

▲ 재일동포 초등학생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응원단’이 4일 아침 일본 요코하마 역전에서 둥글게 둘러서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재일동포 초등학생들의 등교를 보호하는 ‘호위무사’(護衛武士)가 지난 4일 아침 일본 요코하마에 나타났다.

이른바 재일동포 초등학생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응원단’(응원단). 이들 ‘응원단’은 주로 일본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날은 일본에 있는 민족학교들이 일제히 개학을 하고 신입생들이 입학하는 날.

요코하마조선초급학교가 있는 요코하마역 앞 다카시마야(高島屋) 건물 앞에 오전 8시 30분경 30여 명의 ‘응원단’이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요코하마 YMCA 회원들 및 전문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북일 국교정상화를 지지하는 단체 성원,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단체 성원, 생협 담당자, 다문화교육네트워크 담당자, 국제교류재단 성원, 고등학교 현직교사, 시립도서관 사서 그리고 재일동포 2세를 남편으로 둔 릿교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호주 여성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

30여 명의 ‘응원단’은 한국의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처럼 주황색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아 동질감을 표시하고는 다카시마야 건물 앞에 둥글게 둘러섰다. 1년에 한 번 만나고 또 올해 경우 반 정도는 새로운 참가자라 서로 인사와 소개를 하기 위해서다.

오렌지색 리본 달고 거리 행진

▲ ‘응원단’이 주황색 리본을 단채 요코하마조선초급학교를 향해 도보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자기소개에 이어 이날 행사와 관련한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응원단’은 주황색 리본을 단채 요코하마조선초급학교를 향해 도보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응원단’은 20분에 걸쳐 자유롭게 행진을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 못다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 행진의 유래는 이렇다.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한당국이 일본사람을 납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실 인정’과 ‘진상 규명’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납치 문제’만 불거져 일본열도가 분노로 들끓었다.

일본인들은 연일 반북시위를 개최하고 재일동포들에게 위협을 가하자, 재일동포들은 공포에 떨고 기가 죽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일본사람들의 위협과 해코지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이에 양심적이고 뜻있는 일본사람들이 나섰다. 이들은 골목골목마다 지켜 서서 재일동포 학생들이 학교까지 무사히 등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같은 전통이 벌써 12년이 지나 올해가 13년째다.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쳐 올해 12년 만에 첫 졸업을 했다.

손님맞이 청소하는 학생들

▲ 요코하마조선초급학교 학생들이 손님맞이를 위해 빗자루를 들고 교문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응원단’이 학교에 도착하자 어린 학생들이 손님맞이를 위해 빗자루를 들고 교문 계단과 운동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입학식 날인 이날은 휴일인 토요일이라 학부모는 물론 모든 가족이 참석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눈에 띄고 형제자매들도 보였다.

올해 입학 신입생은 모두 11명. 학교 측은 올해 입학생 수가 줄었다고 밝혔다. 전체 학생은 70여명 정도.

▲ 가족사진을 찍고 있는 김진주(6) 학생 일가족.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재학생이 신입생들에게 이름표와 꽃을 달아주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축제 분위기인양, 학교건물 현관에서 신입생 가족들이 입학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앞서 재학생 선배가 신입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이름표와 꽃을 달아주었다.

신입생들은 선배가 달아준 이름표와 꽃에 기뻐하며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가족사진을 찍고 난 김진주(6) 학생에게 입학 소감을 묻자 “긴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뻐요”라고 답한다.

▲ 응원단의 깃발 호위를 받으며 선생님과 함께 입학식장으로 들어가는 신입생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그 사이에 응원단은 운동장에서 ‘입학 축하해요’라고 한글과 일본어로 쓰인 깃발을 조립했다.

이윽고 깃발 조립이 완성되자 응원단은 신입생 입학식이 열리는 체육관 입구 길 양옆에 깃발을 들고 마치 ‘호위무사’처럼 우뚝 선 채 또는 ‘수호천사’처럼 한없는 웃음을 머금은 채 신입생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치 ‘신입생들이여 우리가 보호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등교하세요’ 하는 것처럼.

신입생이 주인인 입학식

▲ 입학식장 광경.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응원단이 입학식 모든 과정을 호위하듯 입학식장 맨 뒤에 깃발을 들고 앉아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오전 10시경 체육관 내에서 2015년도 요코하마조선초급학교 입학식이 진행됐다.

무대 연단은 꽃장식으로 둘러싸여 있고 계단식으로 된 무대에는 모두 11개의 의자가 있어 이날의 주인공들이 앉을 자리가 준비돼 있었다. 무대를 바라보고 왼쪽엔 재학생들, 오른쪽엔 학부모들이 자리잡았고, 맨 뒤엔 ‘응원단’이 마치 오늘 입학식 전 과정을 보호하겠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깃발을 들고 앉아 있었다.

이윽고 신입생들이 화환으로 된 터널을 지나 재학생들이 뿌리는 색종이 가루를 맞으며 학부모 등 참가자들의 세찬 박수 속에 보무당당히 입장해 단상에 올랐다.

▲ 이날의 주인공인 신입생들. 무대 중앙에 자리잡았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한 신입생이 교장 선생님한테 교과서 선물을 받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날의 주인공인 11명의 신입생들이 무대 한가운데 자리한 가운데 입학식이 진행됐다.

개식 선언에 이어 축전 소개, 학교장 인사, 신입생 호명, 교과서 전달, 각계각층이 보내준 선물 전달 그리고 재학생 대표의 축하의 말과 신입생 대표의 입학 결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신입생들을 주인으로 놓고 진행됐다.

신입생들은 호명 소개 때 자기 이름이 불러질 때마다 한 명씩 일어나 “예”하고 크게 소리쳤으며, 교과서와 선물이 전달될 때마다 한 명씩 나와 내용물을 받곤 무대 아래 가운데 서서 참가자들에게 큰절을 하고 자리로 빙 돌아가는 수고스러움(?)과 활달함을 보였다.

▲ 재학생 대표들이 신입생들에게 꽃을 선물하자 장내는 참가자들의 환호 속에 절정에 달했다.[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기념촬영. 신입생들이 깃발을 든 '응원단'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특히, 입학식 말미에 재학생 대표들이 연단에 올라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하며 비닐에 싼 조그마한 꽃을 선물하자 장내는 참가자들의 환호 속에 절정에 달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 소개는 한국이나 재일동포에게 있어 그 호기심은 마찬가지인 듯. 입학식 말미에 교장 선생님이 8명의 교사들과 함께 연단 아래로 나오자 식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교장 선생님이 각 학년 담임선생님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소개하자 학생들의 박수와 환호, 학부모들 참가들의 호응에 입학식은 피날레를 장식했다.

기념사진 촬영시간이 되자 신입생들은 선생님들, 학부모들 그리고 ‘응원단’과 함께 차례로 사진을 찍으며 이날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응원단’, 5월 운동회 때도 참가할 것

▲ 입학식 후 ‘응원단’과 학교 교장, 이사장과의 간담회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입학식을 마친 후 ‘응원단’은 학교 응접실로 이동해 학교 교장, 이사장과의 간담회가 진행됐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 초순, 학교엔 온갖 꽃들이 활짝 피는 날 재일동포 학생들과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일본시민들로 구성된 ‘응원단’과의 인연은 이렇게 한 번도 빠짐없이 13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편, ‘응원단’은 5월에 열리는 요코하마조선초급학교 운동회에도 참가하며, 그 뒤 뒷풀이를 할 예정이다.

<미니 인터뷰> “응원단 운동은 ‘모든 운동의 입구’”
- OR란 이니셜로만 표기해 달라는 일본시민(여, 55세) ‘응원단’

□ 기자 : 응원단엔 언제부터 참가했나?
■ OR : 처음부터다. 2003년부터다.

□ 참가 이유는?
■ 일본사람으로서 재일동포의 차별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재일동포들에게 왜 차별이 있는지 혼자 공부해왔다. 일본사람으로서 식민지 역사에 대한 기초교양과 지식을 가져야 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조선학교 관련 모임에 참석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응원단에 참가하게 되었다.

□ 응원단 운동의 의미는?
■ 이 운동은 아주 쉽다. 어려운 게 없고 그냥 참가하면 된다. 입학식을 보러오고 축하의 마음으로 오면 된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 다른 운동으로, 조금 높은 차원의 운동으로 이어가면 된다. 매년 이런 식으로 참여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응원단 운동이 다른 ‘모든 운동의 입구’로 이해하면 된다.

□ 앞으로 계획은?
■ 재일동포 차별문제를 모르는 일본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재일동포 2세, 3세, 4세, 5세에 걸쳐 차별문제가 계속 있는 한 그 문제를 계속 고민하는 일본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재일동포 차별을 없애는 일을 할 것이다.

(후기 : 일본시민들도 사상, 정견의 자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터뷰이(interviewee)인 이 일본인 여성은 이름은커녕, 본인을 특정 지을 수 있는 사진도 삼가해 달라고 했다. 다만 이니셜은 가능하다고 했다. 일본시민들 중에는 이처럼 재일동포와 ‘우리학교’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같은 어려움 때문에 집회에도 참가하지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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