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신년사에 대한 올바른 독해를 위해서는 북의 노선을 보여주는 공식성명이나 <노동신문> 등의 기사 등 다양한 문서와 함께 신년사를 위치시키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패턴을 추적함으로써 북 당국의 미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더욱 유용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의 신년사에는 미래보다는 과거에 대한 회고이자 현재에 대한 다짐이 강하게 반영돼 있기 때문에 신년사를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요술겨울'로 보고 이를 통해 북 당국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달 27일 열린 한국정치학회의 특별학술회의 '정치학연구방법론:현황과 쟁점'에서 1946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의 신년사 69년치를 자동화된 텍스트 분석(automated text analysis) 기법을 활용해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박종희 교수는 "사용되는 어휘의 종류와 빈도, 그리고 단어의 문맥적 의미를 다수의 자료를 통해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추적함을 통해 북한정부의 정책기조와 대외 행위자에 대한 태도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며, 연구 방법의 특성과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 박 교수는 '남조선', '미제', '핵' 등 핵심어가 포함된 단어와 구절을 단어 자체의 사용여부와 함께 문맥상의 의미를 모두 고려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자료-북한 신년사 텍스트분석, 1946 - 2015]

기존에 북한 전문가들이 주로 신년사를 통해 북한 지도부의 '마음'을 읽어왔다면 새로운 분석 기법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관적 해석의 오류를 줄이고 사용어휘의 종류와 빈도 등을 통해 북한의 대외정책 방향 등을 체계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신년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의 문맥적 의미를 추적한 결과, 신년사는 '지난해에 대한 회고와 신년에 대한 다짐, 통일, 외교, 체제, 경제 등의 주제가 각각 고유한 글덩어리를 구성'하는 고정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신년사에 나타난 단어를 이용한 토픽분석 결과 69개의 북한 신년사는 대략 18개의 토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정 토픽의 등장과 퇴장(중요성의 증가와 감소)은 북한정책기조의 변화와 북한 내외부의 정세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고 "철저하게 계산되고 선택된 정치적 수사이며 이는 해당 시기 북한정부의 주요 정책기조와 대외적 행위자에 대한 태도를 반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이같은 분석기법을 통해서 '남조선', '미제', '핵' 등 북 당국의 대내외적 정책변화를 특징짓는 핵심어를 토대로 한국전쟁에서 김일성 통치기, 푸에블로호 사건, 핵문제의 발발과 전개 등을 거쳐 김정은 집권 시기에 이르기까지 북의 대내외 정세 변화가 신년사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빈도와 문맥 변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남조선 관련 단어 사용의 시간적 변화 (1946-2015년): 가장 위쪽에 있는 단어묶음이 강한 긍정적 호칭, 그 다음이 긍정, 약한 부정, 부정, 그리고 강한 부정의 순으로 배치되었다. [자료-북한 신년사 텍스트분석, 1946 - 2015]

이밖에 지난 70년간 북한의 신년사를 분석한 결과, 북은 한국 내 행정부를 '남조선'으로 표현하고 가장 우호적인 경우에도 '남조선 당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행정부와 한국이라는 정치적 실체를 구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년사에 나타난 대남호칭은 33개였으며, 대부분 '괴뢰통치배', '군사깡패', '군사파쇼독재', '남조선호전광', '괴뢰도당'과 같은 부정적 의미가 강한 것들이었으나 남북관계가 호전됐을 때는 '남조선당국'이나 '집권세력', '남조선 보수당국' 등의 중립적 호칭도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우호적인 호칭을 사용했던 것은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으며, 이명박 정부를 '보수집권세력'으로, 박근혜 정부는 '호전광'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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