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방북기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이번 방북일정을 사전에 계획했을 때 이북의 국가행사나 명절이 없는 기간을 피해서 선택했다. 왜냐하면 국가행사가 빈번하게 개최되는 기간에는 내가 계획한 방북목적과 일정들이 성사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를 담당하는 해당부서들은 행사를 치르면서 동시에 나의 일정을 섭외하고 추진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거나 진땀을 빼야 한다. 또한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제반 업무가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한가한 시기를 선택한 것이다.

나의 이번 방북기간은 2014년 9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잡았으며 내가 설립한 NK VISION 2020의 중요 기관 중에 하나인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원장의 자격으로 방문을 했다. 나의 이번 방북에는 중국과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미국 시민권자 신분의 목회자 부부가 학술원의 회원자격으로 나와 함께 동행했다.

이번에 나의 방북목적은 종교적인 업무와 학술적인 업무를 비롯하여 남북의 양측 사회가 서로 소통하고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 세 명은 매우 차분하면서도 기대감이 넘치는 마음으로 중국 심양에 당도하여 북조선 영사관측으로부터 비자를 받고 평양발 고려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필자)


 

▲ 평양공항에 도착해 고려항공 앞에 선 필자. [사진제공-최재영]

우리 일행을 태운 평양발 고려항공 여객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심양공항에서 오후 1시 55분에 이륙했다. 탑승하자마자 옆에 앉은 승객과 여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되었고 비행기는 어느덧 착륙을 시도하기 위해 평양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누런 황금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순간 여기가 남한의 들녘인지 혹은 중국의 들녘인지 헷갈릴 정도로 북녘의 들판은 조금도 낯설거나 특이한 풍경이 아니었다. 비행기가 착륙 선회 경로에 따라 평양외곽의 순안 지역과 연못동 지역을 돌때 상공에서 내려다본 북녘의 풍요로운 가을 들녘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밭농사와 벼농사를 통해 먹고 사는 것이 남북이 서로 동일하니 풍경이 어색할 리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는 여승무원의 기내 방송이 연거푸 들려온다. 나는 버릇처럼 비행기의 무사착륙과 성공적인 방북일정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이윽고 비행기는 안착을 하였으나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 주변과 공항 영내 일대 주변을 바라보니 온통 아수라장처럼 공사판이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벌떼처럼 활주로 공사에 투입된 인민군 병사들

▲ 활주로 주변공사 작업에 인민군 병사들이 대거 투입됐다. [사진제공-최재영]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하였으나 이상하게 예전처럼 임시 공항청사 앞까지 비행기가 이동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공항 활주로의 어느 낯선 곳에 정지를 하더니 기내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하선하라고 안내했다. 승객들이 트랩을 통해 비행기를 내려가자 공항내부 전용 순환선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서너 대의 셔틀버스들이 동원되어 승객들을 연거푸 임시 청사까지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두 칸짜리로 제작된 최신형 고급 셔틀버스에 탑승하니 버스는 자동문을 닫자마자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순안공항은 여느 국제공항들처럼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이 거의 없다보니 버스는 텅 빈 활주로를 마치 전세 낸 것처럼 독차지하며 마음껏 달린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활주로 양 옆에는 끝없이 군인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활주로 확장공사를 비롯해서 활주로 최신 설비 공사들에 여념이 없었다.

어림잡아 거의 만 명 정도의 인원은 넘어 보일 정도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인민군 장병들이 무더위 속에서도 군복을 입은 채로 혹은 형형색색의 단체복(바지는 군복, 상의는 단체복)을 입고 공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공사장은 일정하게 구역이 설정되어 있었고 각 부대 단위별로 동원되어 업무가 할당된 듯했으며 공사현장에는 어김없이 경쟁적으로 각종 구호판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구호판 내용들은 작업과 건설을 독려하는 “단숨에” “번개처럼” 등을 비롯하여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문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또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군인들의 손에는 삽, 곡괭이 등의 재래식 작업도구들은 물론이고 최첨단 건설기계들과 대형 중장비들을 비롯한 전문적인 특수기계들이 군인들과 뒤섞여 작업하고 있었다.

▲ 활주로 주변공사에 동원된 장비. [사진제공-최재영]

내가 입출국할 때 목격한 바로는 아마도 동원된 병사들은 불철주야 교대하며 공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15분 정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던 버스는 어느덧 평양국제공항 신청사(제2청사) 공사장 앞에 당도했다. 신청사 공사 현장 옆에는 나란히 또 다른 규모의 청사(제1청사)가 이미 우뚝 세워져 있었고 제법 커다란 규모의 부속 건물들도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특히 올 12월 중에 개관을 앞두고 있다는 평양국제공항 신청사 건물 정면 앞을 통과하여 바로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한 임시 공항청사 주차장에 버스가 진입하자 드디어 승객들을 모두 내려주었다. 승객들끼리 이리저리 밀리니 매우 불편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일행과 승객들은 다시 신축청사와 임시청사 건물 사이에 있는 샛길로 들어가서 다시 공항 활주로 방향에 위치한 임시청사 입구 정면으로 들어가서 입국 수속대에 당도하여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입국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이미 평양공항의 모든 지역은 어디를 가나 활주로 공사와 국제공항 신청사의 막바지 공사로 인해서 각종 건축자재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어 매우 복잡했고 트럭들과 각종 기계들로 인해서 소음과 굉음, 먼지 등으로 매우 시끄럽고 번잡했다.

압수당한 성경책과 노트북 컴퓨터

▲ 마무리 작업중에 있는 평양공항 활주로. [사진제공-최재영]

우리 일행은 인민군 장교들이 근무하는 입국 심사대를 1차로 무사히 통과하였다. 입국심사대에서 근무하는 꽃미남형 군인은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 긴장감보다는 오히려 여유 있는 덕담을 건넸고 나를 편하게 대해 주었다. 그와는 이미 구면이었기에 나는 농담으로 응수하며 재미있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며 이제 남은 절차는 가방과 수하물을 찾아서 마지막 관문인 수하물 검색대를 통과하면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날의 수하물들은 기계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에서 짐을 내려서 트럭으로 이동하여 운반하는 절차 때문에 컨베이어벨트에 매우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W모양의 2대의 컨베이어벨트 라인을 따라서 각종 보따리와 박스들 그리고 온갖 형태의 각종 크고 작은 대형 짐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고려항공에는 사람만 탑승한 것이 아니라 마치 북중교역을 위한 수하물들 때문인지 일반 공항과는 달리 단순한 캐리어 가방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친 짐짝들도 아주 많았다. 순안공항 임시청사의 Baggage claim에는 항상 혼잡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카트기가 매우 모자라서 짐을 찾는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나에게 돈이 있다면 새로 오픈하는 국제공항 신청사에 카트기를 수백 대 기증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우리 일행들은 한참을 기다려서 모두 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검색대 밖에서는 우리 일행을 담당할 안내원과 운전기사가 우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수하물 검색대를 통과하려면 담당 관리에게 자신의 여권과 스마트폰을 제출해야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별일이 없으면 여권과 스마트폰을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모든 입국 절차는 마무리된다.

내가 먼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고 이윽고 동행한 부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검색대에서는 부부의 커다란 캐리어 가방 속에서 매우 두껍고 커다란 검은색 재래식 성경책과 노트북이 발견되었다며 직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이번 방문에는 여느 때보다 더욱 입국 반입 물품에 대한 검열이 심한 듯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나는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미 부부에게 사전에 아무것도 기록이 안 된 가벼운 사이즈의 성경책 한 권만을 소지하라고 지침을 주었는데도 부부는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했던 것이다. 더구나 노트북을 지참한 것도 나에게는 사전에 의논하지도 않았다.

나는 모든 승객들이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린 후 수하물 검색대의 담당관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목사 일행이며 체류기간 중에 두 번에 걸쳐서 주일예배에 참석을 할 것이며, 특히 나는 칠골교회에서 주일에 설교도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각자 자신의 성경책을 지참하고 온 것뿐이니 별다른 오해를 하지 말라”며 설득했다. 나는 그동안 방북할 때마다 단 한 번도 성경책이나 노트북을 지참했다고 해서 입국시 문제된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결국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압수당한 성경책과 노트북을 되찾아서 부부에게 돌려주었다.

아마도 이번 압수건은 지난 몇 달 전에 함경북도 청진시의 한 술집에서 성경책을 몰래 두고 나온 혐의로 북한에 6개월 간 억류됐던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 씨의 사건 때문인 듯했다. 상부의 특별지시로 성경책 반입에 대해 공항 측에서 예민한 듯 했다. 그러나 파울 씨는 실제로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하게 호텔방에 성경을 놓고 출국했다고 해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미국에서 성경책들을 반입해서 지하교회에 전달할 목적으로 한국어(조선어)와 영어로 쓰인 성경책들을 몰래 가져와서 배포했기 때문에 억류된 것이다.

부실공사가 발견된 평양국제공항 새 청사

▲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중에 보인 공항 신청사건물. [사진제공-최재영]

평소에 공항에 방문할 때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면 의례히 안내원들과 영접 일행들이 반갑게 맞이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저래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예기치 않은 압수사건 때문에 나와 동행한 부부는 겁먹은 듯 당황하는 기색을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는데다가 안내원 일행까지 안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부부를 검색대 부근에 남겨둔 채 공항사무국 데스크로 가서 해외동포원호위원회(해동)로 전화 연결을 부탁했다. 안내원들을 관할하는 해동 사업국에서는 전화를 통해 이미 나를 담당 할 안내원 일행이 공항으로 떠난 지가 오래 되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라는 답변을 전해주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혹시라도 안내원 일행이 담배를 피느라 주차장에 잠시 나가 있을 것 같아 임시청사 주차장에 나가 보았다. 그러나 낯익은 몇몇 안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안내원임을 자처해서 다가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평양국제공항 신청사 공사현장을 둘러보았다. 새 청사의 이름은 “평양국제공항”이라는 청색 대형 간판이 매우 크게 붙어 있었으며 나름대로 현대식으로 매우 멋스럽고 거대한 규모로 지어졌다.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올라가던 건물이 이제는 서서히 국제공항으로서의 위용과 규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임시 청사와 새 청사 사이에 칸막이를 쳐놓은 주차장 한 켠에 서서 담배를 피고 있던 낯익은 안내원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청사를 향해 손을 가리키며 공사현장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자 그는 최근에 발생한 청사 건축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귀뜸해 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새로 짓는 공항청사에는 출입국을 하기 위해 공항을 찾는 승객들이 청사 현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라운드 형태의 고가도로 형태의 건축물을 이미 오래전에 완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설계와 실제 공사가 차이가 있었고 실제 용도에 적합성이 떨어진 것이 드러나자 상부의 긴급 지시로 그 엄청난 고가도로 건축물을 다시 헐어버리고 새로 짓는 중이라고 하였다. 현재 나의 눈에 보이는 저 고가도로 건축물이 바로 그 새로 짓고 있는 그 건축물이었으며 지금은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상부 지도층에서는 평양국제공항 신청사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게 공을 들이는 모습이 역력했으며 그에 따라 수많은 군인들과 인민들을 공사 인력으로 총 동원하여 정신없이 막바지 공사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 버스에서 본 공항 신청사 공사 모습. [사진제공-최재영]

내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 11월 1일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평양 순안국제공항 건설 현장 곳곳을 둘러보며 현지시찰을 했다고 한다. 김 제1위원장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공항 활주로 공사결과에 대해서는 세계적 수준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으나 신청사의 일부분에 대해서는 재설계 와 재공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김 제1위원장의 지시는 대략 이러했다.

"지난번에 내가 제2항공 역사(평양국제공항 신청사) 건설현장을 시찰하면서 세계적인 추세와 다른 나라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주체성, 민족성이 살아나도록 마감공사를 하라고 과업을 줬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출발 수속을 전담하는 공간과 승객들이 대기하는 공간들을 비롯한 청사 내부의 공간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각종 서비스 시스템들과 시설물들이 청사 내부 공간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으니 이대로 시공하면 어느 한 나라의 유명한 항공청사의 복사판으로 완공 될 수 있다. 그러니 마감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다시 개작 설계안을 만들라”며 특별 지시를 했다. 

완공을 눈앞에 둔 공사현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서 지칭한 “어느 한 나라”는 아마도 내 생각에는 싱가포르의 창이공항(Singapore Changi International Airport)을 북측에서 참고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벼운 대화를 마치자마자 나는 재빠른 걸음으로 다시 임시 청사 안으로 들어가서 안내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아직도 안내원 일행은 당도하지 않은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헐레벌떡거리며 젊은 남성 두 명이 청사 안으로 허겁지겁 들어오더니 나에게로 다가와서 자신이 담당 안내원이며 같이 온 남성은 담당 운전기사라고 소개했다. (계속)

 
미국 The Lignht of Glory Church 담임목사 역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
NK VISION 2020 설립 & 대표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원장
동북아종교위원회 위원장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남가주노회) 소속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박사(GM.D.MIN)
미주장신대학교 대학원 (TH.M)
미주총신대 신학대학원 (M.DIV)
안양대학교 신학과(B.TH), 동 신학대학원(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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