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민간교류가 한창이던 때, 북측에서 말한다. "일 없습네다."

'일없다'. 남측 사람들이 듣기에 '일없다'는 표현은 상당히 불쾌하다. 그래서 다짜고짜 화부터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남측 사람들의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에 북측 사람들은 오히려 더 당황스러워한다. 사실 북측에서 '일없다'는 말은 '괜찮다'라는 표현이다.

60여 년의 분단만큼, 남북의 언어표현과 어휘의 의미는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하나의 민족이라고 노래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  북측 '조선말 대사전'. '겨레말큰사전'은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측 '조선말 대사전'을 1차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하나의 사물을 두고 오징어와 낙지라 달리 말하고, 식당 종업원을 아가씨라 불렀다가 된통 혼나지만 '접대원'이란 표현이 매우 어색할 정도로 남북의 언어차이는 상당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남북 간 이질화된 언어를 하나로 통합하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이 함께 만드는 사전이 있다. 바로 '겨레말큰사전'이 그것이다.

2010년 '5.24조치'로 모든 남북 간 교류가 단절되던 시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도 중단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 4월에 세상의 빛을 봐야 했을 '겨레말큰사전'이지만, 최근 4년 반 만에 남북이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을 재개했다.

'겨레말큰사전'.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언제 시작됐을까.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고 얼마만큼 성과를 거두었을까. 과연 우리 손으로 '겨레말큰사전'의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볼 날이 올 것인가.

문익환 목사, 김일성 주석의 유지. '겨레말큰사전'

'겨레말큰사전'이라고 하면 언어학자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학자들의 필요로 논의가 처음 시작됐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 문익환 목사와 고 김일성 주석이 '겨레말큰사전'의 첫 단추를 끼었다.

1989년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는 김일성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국어대사전'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여기에 김일성 주석이 즉석에서 동의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3년 문 목사의 아들 성근 씨가 방북, 당시 북측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 겸 서기국장에게 사전 편찬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그리고 2004년 1월 문익환 목사 10주기 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에게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요청했다. 이후 남측 '통일맞이'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사전편찬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 '겨레말큰사전'으로 명칭을 결정했다.

이를 토대로 2004년 12월 금강산에서 편찬위원회 실무접촉을 통해 합의서와 부속합의서를 체결,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이 열렸다.

▲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열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공동보도문]

남과 북의 어학 학자들은 내외의 커다란 관심 속에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실천하고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민족어 공동사전편찬을 위한 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을 가졌다.

1.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은 민족어 공동사전을 우리말과 글의 민족적 특성을 높이 발양시키고 통일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며 오랜 역사를 통하여 창조된 우리 민족어 유산을 총집대성한 겨레말 총서를 편찬하기로 하였다.

2. 민족어 공동사전의 이름을 '겨레말큰사전'이라고 하였으며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은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전편찬사업을 2005년 2월부터 시작하여 빠른 기간 안에 완성하기로 하였다.

3. 북과 남의 언어학자들은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를 분기에 1차씩 합의되는 장소에서 진행하며 여기에서 사전편찬과 관련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결정하기로 하였다.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2005년 2월 20일
금강산

[출처-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어 '겨레말큰사전'은 학문적 영역이라는 점을 고려, 전문조직이 필요하다는 뜻에 따라 2006년 1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사업회'(이사장 고은)가 설립됐고, 여기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2007년 4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남북은 2005년 2월부터 1년에 4번씩 만나 2009년 12월까지 총 20차례의 공동편찬위원회와 4차례의 공동 집필회의를 가졌다. 여기에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으로 총 220억여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2010년 '5.24조치'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중단, 2014년 4월 발간 계획이 무산됐다. 이에 국회는 2014년 4월까지 적용되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을 2019년까지 연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중국 선양에서 남북공동편찬회의와 공동집필회의가 4년 반 만에 열렸다.

▲ 2009년 12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제20차 공동편찬회의. 이 회의를 끝으로 남북은 4년 반 동안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의 조직은 남북 당국의 개입이 없다는 점에서 순수 학술집단이라는 특징이 있다. 남측의 표준국어사전 등을 편찬하는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과 북측의 공식 학술기구인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는 총체적 책임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남측에서는 국립국어원 소속 연구원 일부와 언어학 교수들이 참여하고, 북측에서는 '사회과학원' 소속이지만 실제 호칭은 '조선언어학회' 회장 및 회원으로 불려 학술적 목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남측
고은 '공동편찬위원회 상임위원장', 홍윤표 공동위원장, 김재용, 오봉옥, 이태영, 이희자, 조남호, 홍종선(이상 편찬위원), 조재수 편찬실장, 정도상 집행위원장

△북측
문영호 공동위원장, 윤춘현, 정순기, 고인배, 고인국, 최병수, 방린봉, 권종성, 리명복, 허일룡(이상 편찬위원)

▲ 2007년 6월 8일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개소식이 열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고은 이사장, 박용길 장로, 백낙청 상임대표, 이해동 목사(왼쪽부터 순서대로)가 개소식 떡을 자르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이 언어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은 '겨레말큰사전'이 처음이었을까. 남북은 사전 편찬을 위한 공식적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양한 연구활동을 해왔다.

1990년대 '코리안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1994~2001), '코리안 어문규범과 관련한 국제학술회의'(1995~1996), '남북 언어동질성 회복을 위한 국제학술회의'(2001~2004), 정보화시대에 따르는 민족어의 통일적 발전과 언어정보 산업표준에 관한 학술모임'(2002)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남북 언어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 논의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거나 논의를 확장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기에, 실질적인 남북 간 언어 동질성을 위한 논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언어관 차이, 남측 '표준어', 북측 '문화어'

'겨레말큰사전' 내용을 이해하려면 언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언어의 개념을 아는 것은 매우 학술적인 분야이고 연구자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겨레말큰사전'은 남북 간 언어관을 극복하고 하나로 통합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기에 남북의 언어관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남북 언어의 본질은 같다. '나는 밥을 먹는다'는 식으로 주어 다음에 목적어가 오고 뒤이어 동사가 오는 문법구조나 'ㅏ,ㅑ,ㅓ'와 같은 모음, 자음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인 음운체계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어휘, 단어에는 차이가 있다. '동무'라는 단어가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지만, 북측에서는 '혁명을 위하여 함께 싸우는 사람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식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전 남북이 '동무'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했지만, 전쟁 이후 남측에서 '동무'라고 말했다가는 간첩으로 취급받는 것과 같이, 남북이 어휘를 두고 서로 사용법과 의미가 다른데, 이는 남북 간 언어관의 차이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60년 분단 동안 남측에서는 '표준어' 북측에서는 '문화어'라는 개념이 생겼고, 여기에 남북의 체제 의미까지 부여돼, 언어 이질화를 가져왔다.

▲ 2005년 11월 개성 봉동관에서 열린 4차 공동편찬회의. 회의에서는 '단일언어규범을 만들기 위한 작업지침서'(단일언어규범작업요강)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측의 '표준어'는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해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원칙으로 한다.

북측의 '문화어'는 주권을 잡은 노동계급의 당의 영도 밑에 혁명의 수도를 중심지로 하고 수도의 말을 기본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노동계급의 지향과 생활 감정에 맞게 혁명적으로 세련되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언어이다.

이런 언어관을 극복하고 공통의 언어, 공통의 어휘를 사용하도록 돕는 작업이 바로 '겨레말큰사전'이다. 물론, 그렇다고 '겨레말큰사전'이 남북의 언어 통일을 주요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전 하나로 통일된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60년의 세월을 극복하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이 함께 사용하는 어휘, 그리고 어휘에 대한 남북 간 뜻의 같음과 다름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목적이 더 크다.

▲ 2005년 8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공동편찬회의 중인 문영호 편찬위 북측위원장(왼쪽)과 홍윤표 남측위원장(오른쪽). [자료사진-통일뉴스]

'겨레말 큰사전', 어떻게 만들까.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는 올림말, 집필, 새 어휘, 정보화, 형태표기 등 총 5개 분과에서 작업하고 있다.

사전의 가장 큰 작업은 바로 '올림말'. 즉 어휘 선정이다. 올림말이 선정돼야 그에 대한 뜻을 정리하고 사전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림말은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사용되었거나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을 범위로, 표준어와 문화어 외에 새 어휘를 다량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차적으로 '겨레말큰사전'에 등재될 올림말은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측 '조선말대사전'을 대상으로 총 80만여 개 올림말 가운데 등재 후보 어휘가 선별됐다. 여기에 남북은 검토 후 1차 협의로 28만 5천여 어휘를 선정, 여기에 새 어휘 10만 개를 포함해 약 30만여 개의 어휘를 올림말로 선정했다.

여기서 새 어휘는 남북이 각자 사용하는 △문예작품 등 간행물에 나타난 문헌어, △생활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현장어, △해외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중 남북의 사전에 등재되지 못한 어휘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사전에 수록될 어휘가 방대하다는 점을 고려, 남북은 약 23만 개로 줄일 계획이다.

▲ 2009년 10월 개성에서 열린 제19차 공동편찬회의. [사진출처-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선정된 어휘는 뜻풀이 작업인 사전 집필로 이어진다. 사전 집필은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6.15 공동선언' 정신을 토대로 정한 '집필요강'에 따라 이루어진다.

뜻풀이 집필은 전체 올림말을 자모별로 나눠, 남측은 'ㄱ,ㅁ,ㅇ,ㅈ,ㅊ', 북측은 'ㄴ,ㄷ,ㄹ,ㅂ,ㅅ,ㅋ,ㅌ,ㅍ,ㄲ~ㅉ'를 각각 담당한다. 하지만 뜻풀이에서 일관성과 체계성이 요구되는 항목 중 언어학 용어와 문법 형태, 붙임은 남측이, 의성.의태어와 갈래말은 북측이 전담한다.

각기 맡은 자음별 뜻풀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남북이 모든 단어를 집필하고 검토한다고 할 수 있다.

각자 맡은 어휘에 대한 뜻풀이 원고는 서로 나눠 검토작업에 들어간다. 각자 검토된 원고는 다시 교환해 재검토하고, 재검토된 원고를 갖고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직접 만나 합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남북은 이런 방식으로 1년에 7만 6천 개 올림말을 집필, 교차 검토하기로 했지만, 2007년부터 시작, 2009년까지 전체 35만 개 올림말 중 4만 개의 합의만 한 상태이다.

게다가 2010년 이후 편찬사업이 중단, 현재 남측은 2011년 말 까지 독자적으로 12만여 개 올림말에 대한 집필을 끝냈다. 현재, 66% 진행된 것으로 위원회 측은 평가한다.

전체 올림말을 정리하고 뜻풀이가 완료되면, 교정과 교열과정을 거쳐 2019년 사전으로 편찬될 예정이다.

남북은 집필 외에도 '겨레말 말뭉치'를 구축, 사전 전산화 작업을 통해 각종 검색, 통계 및 체계화를 위한 전산처리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 2008년 12월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공동편찬회의. [사진출처-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올림말과 여기에 대한 뜻풀이 과정만 보면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은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남북이 모두 인정하는 언어 규범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남북은 자모 배열순,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형태 표기, 된소리 표기, ㅣ모음 동화형태 표기, 문장부호, 문법 용어 등에서 합의했지만, 두음법칙 표기, 사이시옷 표기, 문법형태 목록, 인용례 출전과 작가 명기 여부 등은 문제로 남아있다.

여기서 두음법칙 적용 여부는 매우 첨예한데,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부인을 '리설주'냐 '이설주'냐 표기하는 법이 다르다는 점, '여자'와 '녀자' 등 남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쪽의 손을 들어주면 될 것 아니냐는 단순한 생각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북은 '겨레말큰사전'으로 남북 주민들의 언어생활에 전혀 구속력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고, 만약, 영향을 준다면, 양측이 모두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편찬위원회는 '형태표기위원회'를 두고 '겨레말큰사전'에만 적용될 언어 규범과 표기 형태들을 호혜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 언어 동질성 회복의 단초가 될까.

'겨레말큰사전'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을 들인 사전 편찬 작업은 민족의 앞길에 큰 도움이 된다.

일제시대 조선어학회가 만든 '조선말큰사전'은 1929년부터 1942년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조선말큰사전'은 분단 이후 남북의 언어사용에 큰 뿌리로 작용했다.

그뿐만 아니다. 사전과 다르지만, 1977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동 번역한 '공동성서번역'은 지금도 각 교파에서 사용하면서 종교 간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동성서번역'은 천주교에서는 성종완 신부, 개신교에서는 문익환 목사가 함께 작업했다.

이런 역사적 사례는 '겨레말큰사전'이 가져올 남북 언어 동질성 회복에 매우 큰 발자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겨레말큰사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남북 당국이 '겨레말큰사전'에 수록된 어휘로 공문서를 작성하고, 민간 학술교류에서 활용한다면 대중에게 미칠 영향은 클 것이다.

또한, 남북의 각급 학교에서 '겨레말큰사전'을 활용한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 동질성 회복을 넘어 통일세대를 키워내는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2019년 세상의 빛을 볼 '겨레말큰사전'에 등재된 어휘로 기사를 작성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 '겨레말큰사전' 집필 예. 가운데 줄은 삭제표시이고 밑줄은 추가표시이다. (출처, 홍종선(2012.3) '겨레말 큰사전'의 성격과 과제') [자료정리-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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